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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08 조회수956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11월 8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When you have done all you have been commanded, say,
"We are unprofitable servants;
we have done what we were obliged to do."
(Lk.17.10)
 
 
 
제1독서 지혜 2,23ㅡ3,9
복음 루카 17,7-10

어제 점심을 먹고 교구청의 신부님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 신부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강의 부탁을 안 받아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사실 저는 강의 부탁을 많이 받습니다. 오늘도 오전과 오후에 강의가 있고, 이번 달만 해도 열 번 이상의 강의와 피정이 잡혀 있습니다. 계속된 강의와 피정에 피곤함도 많이 느끼게 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저와 달리 강의 없는 그 신부님이 무척이나 부럽더군요. 그리고 동시에 늘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는 제 자신이 한심하게도 보이고, 이렇게 일거리를 주시는 주님이 아주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내 자신이 얼마나 교만한 생각을 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 있었던 주종관계를 예를 들면서 이야기하시지요. 하루 종일을 일을 했다고 해서 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지요. 오히려 저녁식사를 준비한 다음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종이 주인의 명령을 수행했다고 해서 주인의 사례나 인사를 받을 권리는 없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을 하신 이유는 당시 바리사이들은 자기가 사람들의 주인 노릇을 할 때에는 사회적 통념대로 피고용자에게 매정하게 대하면서, 자기들이 하느님께 봉사하는 일에는 그 반대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을 열심히 공경하면서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 자신들에게 반대급부로 큰 선물을 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저 역시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인데 조금 힘들고 피곤하다고 거부하려는 모습들. 또한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단한 일을 하는 양 착각하는 어리석음들. 주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에 비해 나의 모습은 정말로 하잘 것 없는 그래서 쓸모없는 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데, 많은 교만과 착각 속에서 어리석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 대해서 해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장담할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주님을 공경하는 것이 우리의 공로라고 주장할 수 없으며, 우리의 선행이 주님께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있는 티켓이 아닌 것입니다. 단지 주님의 자비하심과 사랑에 의지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강압적으로만 누르는 무자비한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에 끊임없이 지켜주시고 보살펴 주십니다. 이러한 주님께 우리 역시 당연히 겸손하고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다가서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서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죽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세상은 바뀔 수 있다.(아리스토텔레스)




고통과 시련의 유익

요런 모습으로 강의한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고통과 시련이 찾아오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싫어하는 고통과 시련이 내게 큰 이익을 될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우선 고통과 시련이 찾아오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요즘에 생각 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신없이 살다보면 무의미한 하루를 보낼 때도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깊이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유익은 바르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은 내가 그 동안 잘못 살고 또 잘못 믿은 것을 깨닫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바르게 생각한 뒤에 마지막으로 하는 것은 주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성경 속에 나오는 시편의 하느님께 대한 찬양의 고백들은 거의다가 자신들이 겪은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얻게 된 것이라고 하지요. 마찬가지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을 통해 결국은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고, 그 과정 안에서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발 내게 오지 않았으면 고통과 시련. 바로 하느님께 다가가도록 만드는 커다란 은총과 축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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