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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108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08 조회수377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11월 8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7-10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여라.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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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보이는 사랑은 더없이 훌륭한 가치입니다. 적당한 이기적인 삶이 상식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사랑은 찾아보기 힘든 가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교 안에서조차 자신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자신에 대한 가치를 찾아가는 모습이 많아진 시대여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사랑의 이상적인 모습은 더욱 더 찾아보기 힘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제 생활이 그렇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의 삶이 변하거나 틀릴 수 없기에 우리에게 희박해져 가는 가르침은 여전히 분명하고 확실한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는 사랑에 있어서 이기적인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적어도 우리가 착하게 살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하느님의 인정을 받는, 그래서 우리의 구원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 정도는 우리의 신앙적 기본으로 알고 있는데 예수님은 그런 생각을 허용치 않으십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그리스도인의 삶이 혹시나 자신의 덕을 쌓는 일이거나 하늘에 공을 쌓아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몫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씀은 분명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말씀입니다.

복음 속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하루 종일 밭을 갈고, 혹은 거친 들에서 양을 치고 돌아온 종들로 비유하십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전제는 하루 종일 갈았던 밭과 데리고 다녔던 양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 때문에 수로로웠던 그 일들은 우리의 수고가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되어 버립니다.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있는 그대로 바꾸어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모든 삶에 대해 하느님이 칭찬을 하시거나 수고의 몫을 헤아려 주시리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누구도 우리의 수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을 살지만 우리가 배우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모든 삶을 서로를 향해 내어주고 함께 살아가는 삶입니다. 사랑이 자신을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달지만 모든 이를 사랑하는 삶은 어떤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행동이 되고, 이용당하고 손해를 당연한 것으로 감수해야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느님도 인정해주지 않으신다면 도대체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단호하고 분명하십니다.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여라.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임하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느님이 우리의 속마음도 아신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방향이 틀렸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세상 사람들처럼 겉으로 꾸미는 겉치레에 의해서 사람을 판단하고 보상하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보이지 않는 말 한마디는 세상 사람들의 질서에나 통하는 방법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말씀을 하느님 앞에서의 처세술로 인식하지 않고, 정말 우리의 진심이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사랑의 실천은 이 말 안에 담긴 진심이 되어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밭을 갈고, 양떼를 지키고 돌보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 곧 주인이 원하시고 시키신 일이기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 하나와 그 밭과 양떼들을 향해 쏟아내는 진심이 우리가 가져야 할 진정한 자세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세상에 내신 이유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마땅한 삶의 자세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하느님께 받은 사명을 인지하는 것일테고,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라는 밭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정성을 다해 땀을 흘리고, 사람들의 갈 길과 먹을 것과 위험을 살피는 것 자체가 우리 삶의 의미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결국 하느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준비를 한다는 말로 우리의 삶을 모두 풀어내지 못합니다. 그저 우리는 살아야 할 삶을 살고, 달릴 길을 달리면 그 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 섰을 때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삶이어서 지금껏 달려 왔노라고 말하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판단은 하느님이 하실 것이고 우리는 그 순간까지 우리 앞에 놓여진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며 살면 됩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이 그러하듯 우리는 우리의 수고와 삶을 서로에게 칭찬받고 보상받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더 큰 복음적 삶의 기반이 된다고도 말하고 선교의 수단으로, 교회의 발전의 영양분으로 이해하고 방법적인 면으로 사용하는 모습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에서 우리의 당연한 수고와 사랑은 의미를 잃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조차 우리의 당연한 일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들어 놓고도 정작 사람들 앞에서는 그 수고의 몫을 어떤 식으로든 차별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은 분명 달리 생각해야 할 부분입니다.



세상이 보는 우리의 불필요한 희생과 사랑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들입니다. 세상이 보고 있는 우리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당하는 수모와 손해는 우리에겐 먼저 내민 손에서 나누어지는 사랑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하느님이 아시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고, 마땅히 그것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진 것일 뿐입니다.

내가 손에 쥐고 있던 것이 누군가에게 주어지면 내 손은 비고, 그는 그것으로 살게 되는 당연한 이치일 뿐입니다. 그것에 당연한 듯 웃음을 짓는 것이 사랑하는 이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땀흘리고 돌아온 종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는 당연히 주인을 위해 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살피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즐거운 종을 어리석다 비웃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 다투고 질투하며 하느님 앞에서 그들이 말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빌려 말한다면 하느님은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이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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