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이 계시면 그 곳이 하느님의 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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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11-11-10 | 조회수447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예전에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사시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썼던 적이 있다. 사실 단순하고 간단하지만 세상의 온갖 관념 때문에 오히려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며 사는 듯 싶다. 결론에서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일치(결합)이다고 말하였다.
내 안에 사랑, 믿음, 겸손, 올바름, 등등의 모든 가치들을 담아두는 것보다 오로지 예수님을 자기 가슴 안에 온전히 모시는 것 뿐이다고 그런 글을 썼던 것이다. 아마도 영성적인 신앙의 삶이 절정의 시간에 올려져 있다면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믿음에 대하여, 올바름에 대하여 여러 말을 생각하기 보다 단 한마디 '예수님' 하고 자주 부르면 된다고 하겠다.
그에게 권하길 사람들에게 사랑, 믿음, 겸손, 올바름 등등에 대하여 많은 설명을 해 주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모시며 '감사합니다'는 말과 함께 예수님께 찬미드리면서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다는 것을 전하여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왜냐하면 예수님이 계신 곳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평화와 기쁨과 행복한 하느님의 나라가 이것이다. 저것이다며 수많은 책들에서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 평화와 기쁨, 행복과 같은 것들에 도리어 난해한 문제에로 봉착되어지고 만다. 제각각 주장하는 말들에서 헤매이며 논쟁과 다툼이 일어나곤 한다 하겠다. 바라는 것은 얻지 못하고 오히려 바라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난다.
그저 한 말씀만 하면 된다. 어렵고 힘들거나 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예수님'하고 부르면 된다. 예수님 안에 사람들이 찾고자 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부르면 우리는 다름아닌 하느님 나라를 부르는 것이다. 사랑을 찾는 것이며 평화를 찾고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 있는, 예수님께서 친히 주시는 것들을 얻는다.
인간이 생각한 말들을 취하는게 아니라 자신에게 제일 필요한 바를 아버지께서 주시고자 하신 가장 좋은 것을 '예수님'에게서 얻는다고 할 수 있다. 그 까닭에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게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이것이다, 저것이다며 자기 관념의 목청을 높이고 다투면서 말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을 자기 안에 모시면 하느님의 성전을 모시는게 된다.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성전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예수님, 곧 하느님의 성전을 세우면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님을 하느님의 성전에 모시게 되어 자기의 몸은 '성령의 성전'이 된다. 자신이 거룩해서 성령님께서 오시며 사실 수 있는게 아니라 자기 안에 모시며 섬기는 예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없는 사람은 성령님께서도 없다 할 수 있다. 먼저는 육적인(예수님) 것이 왔고 다음에 영적인(성령님) 것이 왔다는 실재 사실을 우리는 성령강림 이전과 이후에서 알게 된다. 예수님 없이 성령님을 찾는 사람은 그노시스주의적이다. 이단 영지주의적이다는 의미이다. 성령님이 아닌 극도의 심령주의이다 할 수 있다.
예수님을 모시고 하느님의 성전 안에 성령님이 사시는 성령의 성전이 되는 우리의 몸은 자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자신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와의 결합을 이루어 주시는 일이시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왕이신 예수님과 그리스도의 지체들로 구성된다.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아닌 사람은 하느님 나라의 반역자이며 하느님의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부정하면서 좋으신 하느님 나라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사랑과 평화와 기쁨의 선한 가치들이 도전받고 폭행 당한다.
자기 안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는 사람은 회개하여야 한다. 자기 안에 하느님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영원의 연결점이다. 영원히 하느님의 나라 밖에서 머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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