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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111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10 조회수30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1년 11월 11일 투르의 성 마르띠노 주교 기념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6-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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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성경이 기억하는 가장 잔인한 사건은 아마도 노아의 사건일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물 속에 빠져든 시간, 세상은 멸망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정말 가슴 아픈 것은 그 멸망의 이유가 하느님이 만드신 최고의 피조물인 사람에게 실망하신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삶이 상식이 되고, 그 상식이 모든 폭력과 힘을 정당화하는 세상. 그렇게 세상 마저 추악한 이기의 도구가 되어 버린 세상을 하느님은 버리시려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을 꿈꾸며 기다리는 것이 주님의 오실 날입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끔찍한 이 예고 때문에 불안해 합니다. 누가 구원을 받을지도 확실치 않은지라 서로 자신들은 구원의 대상이라 말하기도 하고, 스스로 흰옷을 해 입고 하늘을 바라보는 일들도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지만 그들 스스로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환희와 엄숙함과 거룩함이 더한 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준비와 상관 없이 그 날은 누구의 대비와도 관계 없는 어느 날이 되리라 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그리고 끔찍한 그 날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으리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그 날은 도망갈 곳도 피할 곳도 없으며 모든 이들은 그저 살던 모습 그대로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습니다. 누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든 것이 무력한 날이 되리라는 선언입니다. 그 때 우리는 정말 우리를 내신 분이 누구시며, 그분이 바라신 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누가 노아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대비하지 못한 날 그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찌보면 노아가 필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노아의 이야기를 알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로들 통해 어찌 살아야 할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살던 모습 그대로 판단받게 될 것이며, 그저 갈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그래서 그날은 방주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직접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멸망했던 세상이 노아를 통해 구원을 얻었고, 아브라함의 지극한 사랑 덕분에 롯이 구원을 얻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구원받을 이들을 구하시리라 하십니다.

그리고 멸망 속에 희망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노아가 그러했듯 세상의 끝이 곧 모든 것이 사라지는 날은 아니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 오심이 세상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심이라는 것이 당신 스스로 우리를 데려가시리라는 약속에서 드러납니다.


아무튼 온 세상이 멸망과 같은 시간에 빠져든다는 것은 이 세상이 또다시 하느님 나라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눈에 노아의 홍수와 소돔에 내려진 유황불의 징벌이 잔인하고 끔찍할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그 물과 불을 불러온 우리의 삶이 더욱 끔직했고, 하느님 마저 당신의 창조를 되돌리고 싶어하실 정도의 실망스러운 상황이었음을 알아 들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거시는 희망과 구원의 의지, 그리고 그 방법이 감추어지지 않고 모두 열려진 채로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모습의 많은 부분은 이기적이고 파괴적이며 살인적이기까지 합니다. 오직 하느님께만 너그럽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길 원하고 우리에게 맡겨진 세상에는 정복자와 파괴자의 모습으로 자신의 것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차지하고 누리고 처리하는 잔인한 일들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 멸망하는 세상의 위기보다 더 두려운 것임을 우리가 알아들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세상의 멸망에 대한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뜁니다. 걱정도 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 날이 온다 하더라도 지금 시간에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에 내가 얼마나 잘 사는 가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분도, 죽이실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저 그분 뜻대로 서로 사랑하며 한 숨 한 숨을 행복하게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야 하늘이 열린 날 고개를 들어 오시는 하느님 얼굴을 보며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웃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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