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에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저희 수도회는 11월 첫 월요일에 위령의 날 행사를 가집니다.
천안에 있는 저희 수도회 묘지에서 위령미사를 드린 다음
먼저 가신 형제들을 기립니다.
돌아가신 몇 형제의 있었던 일이나 훌륭했던 점을 마음에 새기는데
한 선배 형제의 죽음의 장면이 아름답기가 선홍색이었습니다.
여러분 선홍색鮮紅色을 아십니까?
아니 선홍색의 느낌을 아십니까?
모르시면 지금 단풍나뭇잎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공해에 찌들어 말라비틀어진 잎 말고요.
좋은 공기, 좋은 햇빛을 받은 단풍나뭇잎은 칙칙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붉으면서도 선명하니 떨어질 때가 더 아름답습니다.
아무튼 그 형제님은 정말 큰 일도 많이 하고 살기를 잘 살았지만
그보다는 죽기를 잘 죽어 더 아름다웠습니다.
오죽했으면 임종을 지킨 형제들이 그 형제님이 돌아가시자
멋진 죽음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성당 종을 치고
모두 순 잔을 채워 축배를 다 마셨겠습니까?
천 상병 시인은 죽음을 귀천으로 노래하였지요.
이 세상 삶은 소풍이라고 하였고요.
그렇습니다.
죽음은 파멸, 멸망이 아니라 이 세상 소풍 왔다가 돌아감입니다.
하늘로 떠나가는 것이라면 룻의 아내처럼 혹 미련이 있을 수 있지만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니 소풍도 즐겁고 돌아가는 것도 즐겁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헤어짐이 아니라 재회입니다.
거기 가면 다시 만날 분이 있습니다.
나를 너무도 반겨 줄 분,
나를 꼭 안아 줄 분.
그 날은 멸망의 날이 아니라 그분을 다시 만나는 날입니다.
저의 형제님은 그날 그렇게 하늘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형제님의 죽음을 다시 떠올리며
천 상병 시인의 귀천을 다시 읊조려 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소풍 끝내는 날 가서 행복하였더라고 말하리라.”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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