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여든 하나가 되신 콜롬보 신부님은 함께 사는 신부님들 중에 가장 연세가 놓으신 분으로 매우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이시다. 지난 번 자전거를 도둑맞았을 때도 나를 당신 방으로 불러 꼬깃꼬깃 접혀 있는 100 유로짜리 지폐를 건네주시며 ‘이거 보태서 더 좋은 것 사라’고 하셨었다.
오랜만에 콜롬보 신부님 옆에 나란히 앉아서 육시경을 바쳤는데 신부님의 성무일도서를 보니 빛바랜 사진들이 곳곳에 빼곡히 꽂혀 있었다. 기도를 마치고 신부님께 여쭈어 보니 해당 날짜에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사진을 꽂아 두었다는 말씀과 함께 한 분씩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이 분은 우리 엄마, 엄마 사진은 책갈피로 쓰지. 그래야 매일 엄마 사진을 볼 수 있고 또 기도를 바칠 수 있으니까.”
“엄마에 대한 기억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때가 언제예요?”
“나 열두 살 때 소신학교 들어가는 날, 거기 가면 형이 있으니까 외롭지 않을 거라 하시면서 우시던 때가 생각나. 이 사진이 바로 내가 소신학교 들어가면서 가지고 갔었던 사진이야. 이 사진 속의 엄마를 생각하면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큰 기쁨이자 즐거운 일이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콜롬보 신부님은 어린 시절 엄마에 얽힌 이야기들을 내게 들려주시며 행복해하시더니 역시 사제가 되신 형이 요즘 부쩍 건강이 좋지 않아 걱정이라며 안부 전화라도 해봐야겠다고 서둘러 자리를 뜨셨다.
여든이 넘으신 콜롬보 신부님께 기도가 제일 큰 기쁨이자 즐거운 일이라는 말씀이 유독 마음에 새겨진다. 나는 어떤 일을 하든지 이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요소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어떤 이는 아주 기쁘고 재밌게 하는 반면에 또 어떤 이는 잔뜩 찌뿌린 얼굴로 오만 인상을 써 가면서 힘들게 일을 한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어떤 동기가 부여되는가에 달려있다. 콜롬보 신부님에게 기도하는 시간이 가장 기쁘고 재밌는 시간이 되는 데는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엄격한 규율로 유명한 소신학교에 들어가면서 껴안고 눈물을 흘렸던 엄마와의 재회라는 동기가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이왕이면 기쁘고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물론 진리이신 하느님을 체험코자 예수께서 걸으셨던 삶의 여정을 따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진리에 대한 타오르는 열정이 있다면 이 어려운 길을 스스로 선택한 신앙인으로서의 삶이 큰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축복임을 서서히 깨닫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기도와 미사를 바치는 시간이 기쁘고 즐겁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기도와 미사를 봉헌하고 난 뒤에 은총처럼 찾아오는 그 시원한 청량감, 내 영혼이 정화된 그 느낌이 너무 기쁘고 상쾌하다. 주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겠다는 다짐을 한 뒤 내 삶은 참으로 크게 변화되었다. 삶의 가치가 달라졌고 목표가 달라졌다.
물론 지금도 허점투성이로 아슬아슬 칼날 위를 곡예 하듯 걷고 있지만 앞으로도 지속될 삶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나에게 커다란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하루하루 주님의 삶에 비추어 나의 삶을 다듬어 가다가 언젠가는 진리와 하나가 되는 그 감격스런 해후를 고대하며 사는 신앙생활이 어찌 기쁘고 즐겁지 않을 수 있으랴.
기쁘고 재미있는 신앙생활을 즐겨보자. 기쁘고 재밌고 즐거운 신앙생활을 이끌 수 있는 동기를 구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의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왜 믿는가?”
“무엇을 믿는가?”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를 들려 주소서. 꺾여진 내 뼈들이 춤을 추리이다. 당신의 눈을 나의 죄에서 돌리시고 내 모든 허물을 없애 주소서.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새로 지어 주시고 꿋꿋한 뜻을 새로 세워 주소서.”(시편51,8-10)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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