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망은 희망을 꺾는다는 부정적인 뜻을 갖고 있지만, 오히려 그런 꺾임을 경험하지 않은 희망은 비누거품 같을 수 있다. 배고픔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배고프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고 쉽게 말하며 웃을 수 있는데 그런 낙관은 사람들을 낙담하게 만든다. 절망의 바다를 거치지 않은 희망은 희망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위대한 비약에는 사건이 필요하다. 카이로스적 사건인데 오랜 문명의 지혜가 말하고 있듯 그 사건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일이 필요하다. 곧 카이로스의 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사건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지구촌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빈부격차와 부의 독점 상태에 처해 있다. 지금까지 경제부국의 소수가 이렇게 많은 자산과 자원과 지식과 권력을 독점한 예가 없었다.
20대 80은 이미 옛날 얘기이고 지금은 그 격차가 더 심해지고 있다. 상위 1퍼센트의 인구가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지구촌 기아와 빈곤과 저소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법체계도 어떤 정의감도 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다. 풍요로운 사람들은 밤낮으로 부르짖고 있는 다수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그 모습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 위에서 수많은 희망의 메시지가 비눗방울처럼 터진다. 현재의 카이로스는 그 절망의 바다에 빠져들고 있다.
이대훈(성공회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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