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죽은 누이를 살린 기도, 40일간 광야기도 [자기증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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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11-11-12 | 조회수449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기도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보편적이고 오래된 것이며 내적이고 심오한 본질에 속한 행위이다. 기도 안에서 인간은 자신을 발견하고 실현시키고 성장시키면서 완성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사람이셨으며 기도는 그분의 존재 전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기도는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불렀던 ‘아빠’야말로 원래의 기도이며 진정한 기도이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을 아버지의 자녀와 예수님의 형제가 되게 하시고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시고 기도하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기도의 원동력이며 스승이시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에 참여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기도의 연장이다. 성령으로 인하여 일종의 신비스러운 ‘교환’이 일어나 예수님의 기도가 그리스도인 안에 들어가 아버지께 바쳐진다. 기도는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시는 행위에 참여하는 행위이므로 하느님의 은총으로서 주어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대개 구원과 은총을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베풀어 주신다. 기도는 ‘마음의 호흡’ 과 ‘영혼의 음식’과 같은 것이므로 얼마 동안 기도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유혹을 받거나 죄를 범하게 되어 신앙생활에 해를 입게 된다. 꾸준히 기도하여 하느님과 이웃을 보다 사랑하게 될 때만이 그 기도가 진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도 중에 느끼게 되는 위로와 기쁨은 영적, 내적, 감정적, 감각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여러 가지 종류와 단계가 있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서는 좋은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이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여야 하되 위로와 기쁨을 맛보려고 기도해서는 안 된다. 특히 감정적인 위로와 감각적인 기쁨에 구애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야말로 기도와 활동을 온전히 조화시키고 통합시키신 분이셨다. 그리스도인도 늘 기도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도하면서 이 두 종류의 기도가 한 현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또한 기도와 활동을 조화 통합시켜 현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교리서 2741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에게 이롭도록 기도하신다. 우리의 모든 청원은 한 번에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상 부르짖음 속에 모아져, 그분의 부활로써 성부께 받아들여졌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성부 곁에서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전구하신다. 만일 우리의 기도가 자녀다운 신뢰와 대담성을 지녀 예수님의 기도와 튼튼히 결합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모든 것을 얻으며, 이러저러한 것들보다 훨씬 더 좋은 것, 곧 모든 선물을 지니신 성령 바로 그분을 받게 된다. 교리서 2604 둘째 기도는 성 요한 복음사가가 라자로의 부활 사건 전에 기술하고 있다. 그 사건은 감사의 기도로 시작된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말씀에는 아버지께서 언제나 예수님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곧 이렇게 덧붙이신다.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예수님께서도 끊임없이 청하고 계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처럼 감사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어떻게 청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선물을 받으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선물을 주시고 그 선물을 통해 당신 자신도 함께 주시는 분과 일치하시는 것이다. 베풀어진 선물보다도 그 선물을 주시는 분이 더 소중하다. 선사하시는 성부께서 곧 ‘보화’이시며, 성부의 아들의 마음은 그분 안에 있다. 선물은 “곁들여” 주어지는 것이다. 교리서 2605 성부의 사랑의 계획을 성취하실 때가 이르자, 예수님께서는 아들로서 바치시는 기도의 심오함을 보여 주신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붙잡히시기 전에 바치신 기도(“아버지,……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에서뿐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들을 통해서도, 기도하는 것과 당신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 동일한 행동임을 보여 주신다. ... “다 이루었다.”(요한 19,30),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리고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실 때에도, 예수님의 기도와 자기 증여는 동일하다.
어린 소년때, 죽은 누나를 살리기 위해 나는 하느님께 나를 드리기로 하였다 40대 때, 40일간 광야기도후, 나는 내가 만난 아기에게 나를 드리기로 하였다 두 가지의 기도 모두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기증여의 동일한 하나의 마음이다
기도의 무서운 신비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서>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요한복음서>
자기 목숨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게 된 사람의 기도는 어떠할까요 ( 아무나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고 생각한다 ) 하느님께서 그를 놓아 주시지 않으시며 그의 합당한 기도는 기꺼이 받아주신다. 그런 까닭에 사탄에게는 무서운 일이 된다고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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