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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13일 야곱의 우물- 마태 25,14-30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13 조회수370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4“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제게 주어진 모든 것으로 주님의 신뢰에 응답하게 하소서.

세밀한 독서(Lectio)
종말 심판설교(마태 24­25장)에서 인자의 내림(24,29­31)과 최후의 심판(25,31­46)은 서로 직결되는 이야기이지만 마태오는 두 이야기 사이에 ‘종말은 오겠지만 그때는 모르니 깨어 있으라.’(24,32­25, 30)는 큰 단락을 삽입하고 있습니다. 이 단락은 세 편의 비유가 이어지는데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의 비유’와 지난주 말씀인 ‘열 처녀의 비유’, 그리고 오늘 말씀인 ‘탈렌트의 비유’입니다. ‘탈렌트의 활용’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서 후(後) 문맥인 ‘최후심판’의 기준으로 제시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25,14)에 비유됩니다. 주인의 여행과 종들에게 맡겨진 재산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갖습니다. 여행의 시간적 공백이 종들한테 온전한 권한과 자율성을 갖고 맡겨진 탈렌트를 활용할 수 있도록 유보된 시간이라면, 탈렌트는 종에 대한 주인의 신뢰를 나타냅니다. 이 탈렌트를 단순히 재화·재능·소질로 이해한다면 몇 개를 받았느냐가 중요하겠지만 종에 대한 주인의 신뢰라면 주인에 대한 종의 ‘신의와 충실성’이 요청되는 사랑의 과제일 따름입니다.(19절) 비록 여행이 지체될지라도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맡긴 소유에 따른 셈을 할 것이며’(19절), 주인에 대한 종의 충실성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맡겨진 탈렌트를 어떻게 활용했느냐’로 평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15절)
 
주인으로부터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를 받은 종들은 지체하지 않고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자세로 탈렌트를 두 배로 더 벌었습니다.(16­17절; 20.22절) 주인은 그들을 “착하고 성실한 종”이라 부르며 그들의 수고를 “작은 일에 성실하였다.”고 평가합니다.(21ㄱ.23ㄱ절) ‘착하다’는 것은 선에 기반하며 성실은 주인에 대한 충실성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의 선과 충실성에 따른 상급은 주인의 더 깊어진 신뢰이며, 이는 ‘많은 일’을 맡기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것은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21ㄴ.23ㄴ절) 종말론적인 축복으로서 이제 더 이상 주종관계가 아니라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 지위 상승에 있습니다.(요한 15,15­16ㄱ 참조) 이처럼 두 종에게 내린 주인의 똑같은 상급과 칭찬은 셈에 의한 수익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탈렌트를 몇 개 받았는가를 견주어 자만하거나 열등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선의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기는데”(마태 25,18) 그 이유는 주인의 인품을 모진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24절)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것은 땅을 파는 노력과 씨앗을 심는 원인을 제공하지도 않고 결실을 거두려는 부도덕함의 평가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맡겨져 활용해야 할 탈렌트가 아니라(20ㄴ. 22ㄴ절) “주인님의 탈렌트”(25절)로 생각하며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땅속에 사장시킨 이기적이고 불충한 행위를 한 것입니다.(25절) 그는 주종관계에 의한 의무만을 채우려 했을 뿐 주인에 대한 사랑으로 탈렌트를 활용하려는 열정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탈렌트를 땅에 묻어두는 일차적인 행위로써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었으며 주인에 대하여 알고 있었던 대로 행하지 않는 “쓸모없는 종”이 되어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져…거기서 울고 이를 가는” 고통의 장소로 분리되는 것입니다.(26­30절)
 
주인은 자신이 맡긴 탈렌트를 되받는 “내놓아라.”가 아니라 “빼앗아라.”고 명령합니다.(28절) 주인은 소유를 맡길 때 종에게 준 것일까요?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는” 수혜자가 “누구든지”로 확대 적용되고 있습니다.(29절) 누구든지 “주어라” 또는 “빼앗아라”라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더 받거나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인데,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차이는 주인과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그분을 향했던 신의와 충실성에 따라 이루어질 것입니다.(21. 23절) 그렇다면 우리가 소유한 탈렌트의 개수가 아니라 주님께 드린 사랑의 크기가 그분을 만나는 날 충실과 불충실로 드러날 것입니다.(25, 46 참조)

묵상(Meditatio)
제가 받은 탈렌트는 ‘생명’이란 가치로 다가섭니다. 주님으로부터 비롯된 ‘생명’은 어느 누구에게 주어졌든 그 크기가 같으며 비교될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15절) 활용해 가야 할 사랑의 도구이지 품격의 척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할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제가 내놓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묵상해 봅니다. 문득 십자가에 못 박히신 채 두 팔을 벌리고 계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사랑하는 일에 본전까지 잃어버린 분, 그렇게 죽어서 다시 사랑으로 오신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25)

기도(Oratio)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시편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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