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다시 보아라" [영의 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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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11-11-14 | 조회수456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영의 눈, 신앙의 눈을 지닌 이들은 주님께서 인간에게 무엇을 계시하시는지 열어보이신다. 하지만
육의 눈을 지닌 이들은 열어 주시는 주님의 계시를 알아 볼 수가 없다. 눈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영의 말은 듣기가 그들에게는 거북할 뿐이다.
민중혁명의 당원들을 원하시지 않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하셨습니다.그리고 완고한 율법주의자등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마음도 바꾸어 놓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닥의 민중들에게 들어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시며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신비한 능력으로 볼 때 그 당시의 혁명당원들은 얼마든지 예수님을 앞세워 혹독한 지배자들을 물리치고 해방을 성취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그런데 그 혁명당원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 것같습니다.
복음서 어디를 보더라도 예수님께서 혁명당원들과 함께 행동하신 부분은 어느 한 곳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혁명당원들을, 또한 혁명당원들은 예수님을 서로 원하고자 한 상대가 아니었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대정치에서는 예수님을 민중의 혁명가로 내세우려고 자주 시도해 왔습니다. 이는 종교를 이용해서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해 보고자 하는 얄팍한 상술과도 같습니다. 여기에는 특히 자기 종교에 몸 담은 사람들이 그러한 짓을 곧잘 하게 됩니다.
성경 속에는 가리웃 유다가 잘 알려진 혁명당원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이용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했습니다. 다시 잘 새겨보시길 바랍니다. 가리웃 유다는 가난한 사람들, 민중들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 곁에 포진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민중의 혁명가 역할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가리웃 유다는 단지 예수님 주위에서 기웃거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가리웃 유다의 유토피아 세상,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하고 있었다 할 것입니다.
이렇게 정치의 혁명을 꿈꾸는 이들은 언제나 가리웃 유다와 같습니다. 예수님을 이용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야기 하고 종교를 이용하기 위해 종교에 몸을 걸치고 있으며 교회를 이용하기 위해 교회에 소속해 있습니다. 언제나 중심의 주변을 기웃거린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들은 가리웃 유다처럼 가난한 민중들을 염두에 두고 '그 값비싼 향유를 왜 허비하느냐'고 힐난합니다. 자신의 이상을 생각하면서 가리웃 유다 자신의 뜻에 예수님을 맞추고자 합니다. 자기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뜻에 예수님을 맞추려고 예수님과 종교와 교회를 이용한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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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 가운데 되돌아간 혁명당원 [하나는 누구인가]
'나는 살아있는 빵이다 나를 먹고 나를 마시는 사람은 산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 열둘을 뽑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하나는 악마다.” 이는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사실 그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머지않아 예수님을 팔아넘길 자였다. <요한복음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가리웃 유다는 혁명당원이었고 그는 예수님 주변을 맴돌며 기웃거렸다 그는 되돌아가지 않고 자기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예수님과 그리스도교와 교회를 이용하고자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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