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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눈(目)’과 ‘봄(見)’ - 11.1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14 조회수431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1.11.14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마카베오 상1,10-15.41-43.54-57.62-64 루카18,35-43

 

 

‘눈(目)’과 ‘봄(見)’

 

오늘은 ‘눈(目)’과 ‘봄(見)’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눈이 열리다’ ‘눈을 뜨다’ ‘눈이 멀다’ ‘눈이 가리다’

‘눈높이를 맞추다.’… 등 눈에 관련된 말은 끝이 없습니다.

역시 ‘봄(見)’에 관련된 볼 ‘견(見)’자가 들어가는 말도 많습니다.

견해(見解), 견성(見性), 선입견(先入見), 편견(偏見) 등이요,

관상(觀想), 각자(覺者)에서 보다시피

봄(見)과 깨달음(覺)이 깊은 관계에 있음을 봅니다.

 

있는 그대로, 제대로 잘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합니다.

잘 봐야 올바른 판단입니다.

하여 신언서판(身言書判) 중 으뜸으로 치는 게 ‘판단(判斷)’입니다.

 

불교의 깨달음에 이르는 여덟 개의 길인 팔정도(八正道) 역시

바르게 보는 ‘정견(正見)에서 시작됩니다.

정견(正見)에 이어 정사유(正思惟;바르게 생각하기),

정어(正語;바르게 말하기), 정업(定業;바르게 행동하기),

정명(正命;바르게 생활하기), 정정진(正精進;바르게 정진하기),

정념(正念;바르게 깨어있기), 정정(正定;바르게 집중하기)로 이어집니다.

 

저는 오늘 복음 장면이 흡사 미사장면을 압축한 듯 보였습니다.

길목에서 주님을 기다리던 눈 먼 걸인은

주님이 나타나자마자 주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눈 먼 걸인은 그대로 주님을 갈망하는 우리 구도자를 상징합니다.

우리 역시 매일 미사가 시작되는 길목에서 주님을 만나자마자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세 번씩 간절한 마음으로 자비송 기도를 바치며 미사를 시작합니다.

 

간절히 찾고 부를 때 응답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문 먼 걸인의 갈망을 꿰뚫어 본,

주님의 단도직입적 질문에 걸인의 즉답입니다.

소원이 간절할수록 소원은 짧고 단순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진정 구도자라면 소원은 이 것 하나뿐입니다.

제대로 잘 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마음 따라 보는 눈입니다.

똑같은 눈이라도 보는 것은 다 다릅니다.

보는 이도 있고 보지 못하는 이도 있습니다.

 

탐(貪;탐욕), 진(瞋;성냄), 치(痴;어리석음)에 눈이 가려버리면

눈 뜬 장님이라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마음이 깨끗하면 하느님을 본다 했습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마음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 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눈을 잃은 이들,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영적 삶은 부단한 ‘탈출(exodus)의 여정’이자

마음의 눈이 열려가는 '개안(開眼)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1독서 마카베오 상권에서 우리의 현실을 묵상했습니다.

그리스의 문화, 종교, 관습과 동화되어가면서 정체성을,

민족 고유의 민족혼의 눈을 잃어가는 이스라엘입니다.

여기에 저항하여 일부는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고 그렇게 죽어갔다 합니다.

 

중국에 속국이 되었다가 일본에 이어

이제는 미국의 속국이 되어 미국화 되어 감으로

우리 고유의 눈을 잃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미 간의 불평등한 FTA 조약도,

미군의 군사기지가 예정되는 강정마을의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할 것입니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동화되지 않고 우리로 살아남기 위해

지도자들은 물론

국민들의 각성과 지혜로운 안목이 참으로 절실한 시대입니다.

 

나라는 물론 개인의 경우도 똑같습니다.

물질주의, 금전만능주의 현실에 세뇌되어 속화(俗化)되다보면

마음도 무뎌져 마음의 눈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깨어 제대로 보고 살 수 있도록 규칙적이고 항구한 영성훈련이

참으로 필요한 시대입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걸인은 다시 보게 되어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라 살라고 있는 우리의 눈입니다.

 

주님은 매일 미사의 길목에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어

당신을 찬양하며 당신을 따라 새롭게 하루를 살게 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8,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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