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내 사랑,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밤새 그렇게 지켜 주었다는 기쁨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별빛이 반짝이는 조용한 이 밤은 내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장 행복한 밤이 될 것이다. 그렇게 조용히 앉아 있는 우리 두 사람 주위로 별들은 마치 양 떼처럼 고요하게 지나갔다. 나는 고요함 속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저 수많은 별들 중에서 가장 예쁘고 가장 반짝이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몸을 기대고 잠들어 있는 것 이라고...... 저 별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 하나가......”
주인집 아가씨 스테파네트를 향한 목동의 청순한 사랑을 맑고 깨끗하게 그린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단편 소설 ‘별Les étoiles’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 글을 처음 읽었던 소년 시절부터 중년이 되어버린 지금까지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이내 스무 살 목동의 마음이 되어 내 어깨에서 빛나고 있는 스테파네트의 머릿결을 숨죽여 쓰다듬는다. 그리고는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요즘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면 서둘러 방에 올라와 옷을 갈아입는다. 아래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체육복에 바지를 껴입는다. 윗도리는 티셔츠에 양모 스웨터 그리고 두꺼운 겨울파카로 무장을 한다. 거기에다 베레모를 푹 눌러쓰고 머플러로 목을 따뜻하게 한 다음 장갑을 끼고 나면 몸뚱이는 준비 완료! 천천히 밖으로 나가 가로등 빛이 잘 미치지 않는 후미진 뒤 뜰 한 복판에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향해 눕는다. 처음에는 그냥 멍하니 깜깜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내 눈의 조리개가 충분히 열려 많은 빛을 흡수할 때 까지 기다린다. 그 다음부터는 나안裸眼으로 별자리를 확인하고 쌍안경으로 더 자세히 비춰보는 일을 거듭하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방향을 바꿔가면서 놀면 된다.
역시 겨울 별자리 중에 가장 선명한 빛을 내는 오리온이 제일 먼저 시야에 쏟아져 들어온다. 그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와의 못다 이룬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리온에서 오른쪽으로 조심조심 눈길을 옮기다보면 사냥꾼을 무서워하지 않는 양 한 마리를 만날 수 있다. 거기서 조금만 더 오른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날개를 단 천마天馬 페가수스를 만난다. 시인들이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페가수스가 바위를 발로 차서 만든 히포클레네의 샘물을 나눠 마시기 때문이다. 샘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기운을 차려 길을 가다보면 큰 곰 한 마리를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북두칠성 혹은 큰 국자Big Dipper 자리가 그 놈의 등허리와 꼬리에 해당한다. 순하게 생긴 이 곰은 원래 제우스의 아이를 낳은 죄로 헤라의 저주를 받아 곰이 되어 숲 속을 헤매는 칼리스토였다. 큰 곰 바로 옆에는 헤라클레스에게 죽임을 당한 사자 한 마리가 별이 되어 어슬렁거리고 있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 소년시절 별을 노래하던 마음으로 돌아가 이제는 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밤하늘을 보고 누워서 쌍안경으로 부지런히 별빛을 쫓아다니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 새 신화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나를 느낄 수 있다. 그 신화의 세계 속에서의 신들은 우리들 인간들과 똑같이 술에 취하고, 음악을 듣고, 사랑에 빠지고, 자녀를 출산하고, 질투를 느끼고, 전쟁을 하면서 살아간다. 한 가지, 그 신화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현실로 다가온다. 사람이 곰이 되기도 하고, 죽었다가 살아날 수도 있으며, 사랑하는 사냥꾼이 죽으면 밤하늘에 올려 별로 반짝이게 한다. 실제로 내가 어렸을 때는 이런 일들이 가능하다고 믿었었고 자주 그런 꿈을 꾸었다. 그래서 훨씬 생동감이 넘치고 정이 느껴진다. 신화의 세계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별을 보면서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중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려오면서 그 동안 포기했거나 혹은 잊고 살았던 많은 꿈들을 나는 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찾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루브롱 산의 목동이 되어 하느님과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을 꿈꾸기 시작했다. 나는 하늘을 나는 구두를 신은 페루세우스가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재미나게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시 되살려냈다. 이것들은 모두 별을 바라보면서 생긴 일 들이다.
내 친구들도 별을 바라보면서 살았으면 참 좋겠다. 나는 내 친구들과 다시 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먹고 살기 바빠서 땅의 일만으로도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팔자 좋은 소리냐고 흉보는 몇몇 친구들의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나는 피곤할수록 오히려 더 하늘을 많이 보고 살라고 다시 말해주고 싶다. 바쁜 낮 시간 다보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멍하니 밤하늘 별들에게 눈길 한 번 주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으니 말이다.
별을 보면 밥이 나오냐고? 돈이 떨어지냐고? 으이그, 밥 생각, 돈 생각 다 떨쳐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별만 지극히 바라보고 서 있어 보라니까. 그러면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순수한 꿈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잃었던 희망이 되살아난다니까. 진짜라니까. 내 말만 믿고 오늘 밤부터 고개 들어 밤하늘에 눈 길 한 번 만 줘보라니까. 그러면 길을 잃은 별 하나가 살며시 네게 다가올거야. 넌 그 별이 쉴 수 있도록 네 작은 어깨 하나 내어주며 너그럽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다시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되는 거지.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아라. 누가 저 별들을 창조하였느냐?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 보면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이사40,26. 시편8,3-4)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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