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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116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16 조회수311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11월 16일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1-28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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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접근하심은 하느님이 당신의 자리를 찾으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들의 삶을 판단받게 되는데, 사람들의 태도는 예수님의 비유에서처럼 둘로 갈라집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비유는 탈렌트의 비유와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심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예수님의 사건을 이미 아는 우리에게 이 귀족을 예수님이라고 했을 때 이스라엘이 예수님의 방식이나 가르침을 거부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결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를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반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귀족이 떠난 뒤에 그들이 모아 올린 생각은 그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내줍니다.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초점은 그 귀족이 미나를 맡긴 종들에게로 다시 모아집니다. 왕이 되어 돌아온 귀족은 그가 믿고 재산을 맡긴 종들을 불러 셈을 합니다. 탈렌트의 비유와 달리 이 종들은 모두가 한 미나씩을 받아들었습니다.

탈렌트의 비유가 그들의 능력에 따른 배분이었다면, 이 이야기에서는 하나의 가치를 두고 어떻게 살았는지 능력이 드러나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그 능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집니다. 열 미나를 번 종은 열 고을을 맡게 되었고, 다섯 미나를 번 종은 다섯 고을을 다스리게 됩니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그러나 이야기는 이런 셈에 따른 보상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보상을 받은 종들의 기쁨을 다루고 있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능력의 종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보상에는 별 감흥이나 욕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판결을 받는 한 종의 등장이 이야기의 방향을 바꿉니다. 탈렌트의 비유에서 한 종이 탈렌트 하나를 땅에 묻었다면 이 비유 속의 한 종은 그 한 미나를 손수건에 감싸 보관합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그대로 돌려줍니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이 종은 주인에게 주인의 재산만을 돌려준 것이 아니라, 그가 주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고백합니다. 주인은 그를 믿고 재산을 맡겼으나 그 재산이 믿음이 아니라 부담이었고, 족쇄였다고 종은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이 종은 주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주인의 관심에서 자신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오히려 주인을 벗어나고 싶을만큼 싫었던 모양입니다.



종은 주인을 아는 사람입니다. 주인의 마음과 주인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이어서 그저 주인의 이름을 알고 그의 통치에 영향을 받기만 하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런데 그 종이 주인에게 가지는 생각이 공포에 가까운 부담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주인이 그를 믿는다는 것은 어떠한 효과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종은 주인이 없는 동안의 공백에 책임감있는 성실함도 발휘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지도 못하는 지옥같은 시간일 뿐입니다.

그것은 주인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한 이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망가진 마음일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키고자 그 주인의 돈에 손을 대지도 않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그는 주인이 맡긴 미나를 빼앗기고 그 미나는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집니다.


이 비유 속에는 주님을 싫어하는 이들과 주님의 사명을 알고 기쁘게 수행하는 사람과 주님께 거부감을 가지고 자신의 사명 조차 짐스러워하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나타난다면 이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하느님을 맞이하게 될 것은 뻔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막고 싶어도, 피하고 싶어도 귀족은 왕이 되어 버리고 귀족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했던 사람들의 보낸 메세지는 그들이 심판받는 구실이 되어 버립니다. 또한 주인을 싫어한 종의 결정도 결국 그를 지켜내는 방법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욕심없이 주인의 신뢰에 기뻐하고 그 맡겨진 일에 충실했던 종들이 주인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남기고 예수님은 비유 속의 이야기를 현실로 만드시려는 듯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고, 그 심판은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한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셨고, 세상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써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예수님이 인류의 왕이 되셨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심판이 바로 이뤄지진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분을 기다리는 시간들입니다. 이제 그분이 우리에게 돌아오시는 날을 기다리는 것만이 남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나눠주신 그분의 생명 안에서 하나의 유산을 나누어받았고,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세상을 살아야 할 사명을 받아 쥐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주님을 어떤 분으로 여기고 사느가에 따라 결정 될 것입니다.


이제 곧 그리스도왕 대축일이 지나면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때 우리의 삶이 불안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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