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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유냐, 존재냐/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17 조회수864 추천수15 반대(0) 신고



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프리카 ‘토고’ 출신인 라자로 신부가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와 할 말이 있다며 식사 후에 잠깐 시간을 내 달라고 부탁했다. 얼른 식사를 마치고 나가 영문을 물으니 ‘어디를 가야할 일이 생겼는데 기차표 살 돈이 없어서 20유로만 빌려 달라’는 것이었다.

항상 진지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라자로 신부의 성격을 잘 아는지라 네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갑 속에 있던 50유로를 다 건네며 말했다.

“어떻게 딱 기차표만 사가지고 갈려고 그래. 내가 어렸을 때는 기차 탈 때마다 삶은 계란하고 귤을 사먹곤 했었어. 혹시 모르니까 다 가져가봐.”

“아냐, 아냐. 이 걸 다 가져가면 언제 갚게 될지 몰라. 또 이만큼 필요도 없고......”

그는 끝내 사양하고 동전 몇 개를 합해 간신히 만든 20유로를 들고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아마 지금쯤 라자로 신부는 주말이면 혼자서 잘 그랬던 것처럼 어느 해변가를 향하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기차 여행을 즐기는 행복한 꿈을 꾸며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그가 나간 뒤 한국 뉴스를 보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눈이 휘동그레질만한 소식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 최고 기업 총수의 막내딸이 사망했는데 사인은 놀랍게도 자살이라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돈과 재능과 미모에다 아직 젊은 그녀는 도대체 무엇이 부족하여 다시는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야만 했을까?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녀만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한 가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남의 눈에는 무엇 하나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정작 그녀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말 완행열차 왕복티켓을 구입할 20유로를 손에 쥐고 행복한 미소를 짓던 가난한 사제의 얼굴과 인터넷을 통해선 본 그녀의 무표정한 하얀 얼굴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다시 한 번 ‘소유냐, 존재냐Haben oder Essen’를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인간 생존의 두 가지 양식을 ‘소유양식의 삶’과 ‘존재양식의 삶’으로 구분하고 현대산업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소유에 집착하는 삶의 방식에서 연유한다고 말한다. 소유에 집착하는 삶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삶의 방식이다. 사람들은 이제 생존에 필요한 것을 넘어 오직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더 많이 ‘가지는 것’에 탐닉하고 있다.

반면에 ‘존재양식의 삶’은 “어떤 것을 소유하지도 않고 또 소유하려고 갈망하지도 않으면서 즐거워하고 자기의 재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며 세계와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존재양식의 삶’에 충실한 사람은 빼앗길 게 없기에 언제나 이웃과 세계에 마음을 열어 놓는다.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삶은 그 추구하는 바가 극명하게 다르다. 전자는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반면 후자는 바로 ‘정신적 만족’을 추구한다. 물질적인 풍요는 결코 우리들의 고독과 불안, 공허와 권태감을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죽음만큼 깊은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오직 이웃과 가진 바를 더 나누고 사랑하며 기쁘게 살다가 결국에는 세계와 하나가 되는 정신적 차원의 만족을 체험하며 사는 길만이 우리를 참으로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줄 수 있다. 이것은 결코 틀린 생각이 아닐 것이다. 인류의 스승들이 한결같이 우리를 향해 부르짖는 가르침이 결국 이 말 아니었는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네가 애써 모은 재산을 남에게 넘겨 줄 작정이냐? 네가 땀 흘려 모은 재산을 남들이 제비뽑아 나눠 갖게 하려느냐? 남에게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기쁘게 살아라. 무덤에 가서 기쁨을 찾을 생각은 하지 말아라.”(집회14,15-16)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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