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평화와 깨어있음 - 11.1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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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11-17 | 조회수437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11.11.17 목요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1207-1231) 기념일 마카베 상2,15-29 루카19,41-44
평화와 깨어있음
오늘 24세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성녀 엘리사벳을 묵상하는 순간, ‘아, 하느님은 삶의 의미이구나. 하느님이 빠진 삶이라면 참 무의미하고 허무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화답송 후렴 중, ‘구원’을 ‘평화’로 바꾸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오늘은 ‘평화와 전쟁’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오늘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주님의 기도를 바치던 중 평화를 통해 빛나는 아버지의 이름이며, 평화를 통해 도래하는 아버지의 나라며 평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아버지의 뜻임을 깨달았습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들이라 하며
참 역설적인 인간 존재입니다.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끊임없이 전쟁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인류사를 요약한다면 ‘전쟁사’라 할 만 합니다. 지금도 국내외로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밖에서만 전쟁이 아니라 우리 역시 평화로울 때 보다 불화와 불평, 불만의 내적 전쟁 상태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세상은 그대로 우리 내면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탐욕과 무지에서 두려움과 불안이요 여기서 발생하는 전쟁입니다. 전쟁을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 두려움과 불안이 내재해 있고 두려움과 불안의 뿌리에는 탐욕과 무지가 똬리 틀고 있음을 봅니다.
탐욕과 무지가 폭력의 악순환의 원흉입니다.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참 평화도 요원합니다.
빛나는 태양 앞에 사라지는 밤의 어둠이듯이 주님 주시는 참 평화의 빛이 탐욕과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 깨어있게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깨어있게 하고 깨어 있을 때 평화요 이어 사라지는 탐욕과 무지,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그러니 깨어있을 때 평화요 잠들어 있을 때 전쟁임을 깨닫습니다.
인사차 명진 스님을 방문했을 때 늘 깨어 있으라는 의미로 죽비를 선물했고, 박 시장 역시 ‘시장실에 늘 걸어두고 경책의 의미로 삼겠습니다.’하며
깨어있음은 바로 평화의 하느님의 현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감추어져 있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복음 서두와 말미의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깨어있어야 열린 눈으로 평화의 주님을 뵈었을 텐데 탐욕과 무지로 눈이 가려져 있어 하느님께서 찾아오신 때를 몰랐으니 평화는 요원할 수뿐이 없습니다.
깨어있는 이들이 연대를 이룰 때 비로소 도래하는 평화입니다. 전쟁 역시 밖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잠들어 있을 때 자초하는 화입니다. 전쟁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깨어있음의 평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어 평화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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