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부터 몸이 찌뿌드하고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진다 싶더니 늦은 오후에는 열이 오르고 머리까지 멍해져 가을 햇살의 강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뛰쳐나가지 못한 채 결국 이불 속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긴 내 몸이 강철로 만들어지지 않은 다음에야 그 동안의 누적된 피로를 어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석 달 가까이 머물렀던 에드먼튼을 다시 떠나야 할 때에 이르게 되자 마치 세상 종말을 앞 둔 어설픈 스피노자마냥 부지런히 싸돌아다니며 포도나무의 소출을 축내고 다닌 탓이리라.
어느 분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요요마의 첼로 연주를 들으며 두꺼운 이불을 둘러쓴 채 소파에 누워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이 곳에서 지내는 동안 겪었던 재밌었던 일들, 만났던 친구들과 형제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니 시간은 어느 새 깊은 밤을 지나고 있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수없이 많이 떠오르는 기억들 사이로 갑자기 외롭다는 감정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세상 곳곳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며 살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이럴 때 머리에 손을 얹고 서로의 체온을 비교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혼자 사는 사람들의 쓰라림이다.
어디선가 전화라도 한 통 걸려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그 새벽에 누가 전화를 하겠는가? 어머니께 전화라도 드려볼까 생각도 했지만 추석 안부 전화 한 번 없었다고 약간 삐져 계실 분께 갑자기 전화 드려서 아프다고 하소연하기도 좀 그렇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은 오지 않고 그럴수록 기분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다운되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그 동안 미뤄온 메일 답장이라도 할 생각에 컴퓨터를 켜고 앉았더니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보낸 사람 이름은 사촌여동생 ‘주연’, 제목은 ‘오빠, 괜찮아?’. 순간적으로 ‘아니 얘가 내가 몸이 좋지 않을 것을 어떻게 알고 메일을 보냈지?’하는 생각이 들어 깜짝 놀라 메일을 열어보니 그 내용은 웬걸 ‘힘없이 고개 숙인 남성분들, 다시 불을 붙여드립니다. 정품 비아그라 싸게 구입하세요’였다. 효능이 없으면 환불 해 준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보통 그런 스팸 메일을 잘 못 열면 화가 나는데 반해 그 때는 왠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보내는 사람 이름과 제목까지는 완벽하게 일치했는데 내용은 완전히 번지수를 잘 못 찾은 메일이었다. 열이 나서 끙끙 앓고 있는 사람한테 불을 더 붙여서 도대체 뭘 어쩌자고......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하여 답장을 쓸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혹시 아스피린 같은 해열제도 끼워 주나요?”
어이없는 스팸 메일 한 통을 열고 ‘키킥’ 거리며 웃다보니 그 순간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불현듯 떠올랐다. 몸이 불편할 때 일수록 자꾸 가라앉는 내 영혼에 불을 놓아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잊고 사람의 위로만을 찾고 있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나는 다시 자리에 들어 성서를 펴고 읽기 시작했다. 지혜서를 몇 장이나 읽었을까? 졸음이 쏟아지고 내 손가락에 힘이 빠지더니 성서가 자꾸 내 이마에 손을 얹어 주었다. “그래, 역시 내가 아플 때 나에게 다시 힘을 주시고 내 이마에 손을 얹어 주시는 분은 따로 계시지......”
“야훼께서는 영원하신 하느님, 땅의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힘이 솟구쳐 피곤을 모르시고, 슬기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힘이 빠진 사람에게 힘을 주시고 기진한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청년들도 힘이 빠져 허덕이겠고 장정들도 비틀거리겠지만 야훼를 믿고 바라는 사람은 새 힘이 솟아나리라.”(이사40,28-31)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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