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펌 - (142)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에 | |||
---|---|---|---|---|
작성자이순의 | 작성일2011-11-19 | 조회수31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작성자 이순의(leejeano) 번 호 7487 작성일 2004-07-15 오후 4:04:40 2004년7월15일 목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ㅡ이사야26,7-9.12.16-19;마태오11,28-30ㅡ (142)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에 이순의 여름 장맛비가 연일 계속 되기는 섬마을이라고 예외 일 수는 없습니다. 김치가 떨어졌는데 비가 오신다고 김치 없는 밥상을 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퍼근퍼근허니 스펀지 같은 밥을 목구멍 속으로 넘기는 데는 김치만한 윤활제가 없습니다. 바다 가운데 섬에는 항상 바람이 있습니다. 바람과 손을 잡고 탱고를 추는 비의 모습은 산천의 눈을 흐리게 하는 황홀경입니다. 토방에 서서 벌판을 바라보노라면 몰려다니는 군중들도 들리는 음악만큼이나 웅장합니다. 이런 날에는 수풀들도 숨죽여 고요히 젖어있습니다. 작은 마당가에 종자를 뿌려 제법 처녀꼴을 하고 늘어진 푸성귀 몇 포기를 뽑아다 처마 밑에서 다듬기 시작 했습니다. 때로는 탱고에 젖어 촉촉한 비의 드레스자락이 거기까지 파고 들어와 차가운 엑기스를 뿌리고 휘돌아 갑니다. 잊을만하면 또 다가와 춤을 추는 당신을 보아달라고 방울방울 물방울을 흩어 뿌리고 이내 도망을 갑니다. 그 황홀경에 취해 젖다가 말다가 푸성귀 다듬는 거친 손에 젖은 황토가 보드랍습니다. 그런데 원죄의 탓일까요?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들어와 오싹한 전율이 느껴집니다. 텅 빈 농가에 나 혼자인데 누가 나를 처다 보느라고 정신을 뺏고 있습니다. 담 밑의 길가에 아랫녁 귀머거리 할배라도 지나가는가 싶어 벌떡 일어나 내려다보아도 인기척이 없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몰려 오셔서 한기가 든 탓이려니 싶어서 다시 뿌리에 붙어있는 황토자리를 싹둑 동강을 내고 풋 냄새 향긋한 야채를 손질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원죄의 소름이 나를 기분 나쁘게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광활한 대지의 변두리에 놓인 외딴집에 허수아비 말고 누가 경계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다시 벌떡 일어나 뒤 곁으로 돌아 언덕 위 대나무 숲을 바라보았습니다. 숲속에 숨어 조잘 대던 잡새들도 기척이 없습니다. 기척을 했다가는 탱고의 물벼락을 피하지 못 하고 젖어버린 날개를 퍼덕이지 못 할 테니까요. 도대체 원죄의 소름이 어디서 느껴지는 걸까요? 먼데 저수지 넘어 숲 속의 초등학교 교실에 앉았을 아들에게 의지 하면서 어서 돌아와 주기를 빌었습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원죄의 소름이 너무너무 무섭습니다. 다시 주저앉아 대지의 숨결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젖은 황토가 붙은 뿌리를 도막내 버렸습니다. 그러고도 그 기분 나쁜 소름이 느낌으로 왔습니다. 다시 벌떡 일어났습니다. 수풀도 젖어버린, 참새도 숨어버린, 곤충도 흔적이 없는! 비와 바람의 탱고만이 넓은 초록의 여름산천을 누비고 있건만 어찌하여 이렇게 기분이 나쁜 감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푸성귀 담은 바구니를 마루에 올려놓고 차라리 방에 들어가 이불속에 있다가 아들이 오면 다시 다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토방을 막 돌아 드는데! 우리 집 지붕에는 참새네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서 일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인간 세상의 속담 중에 "사흘을 굶으면 담을 넘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긴 짐승은 사흘도 더 굶었을 게 분명합니다. 비의 탱고가 쉴 줄을 모르고 발목에 힘을 주고 있었으니, 산천의 모든 들짐승과 날짐승들이 기초체력에 의존하느라고 거동을 하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니 긴 짐승께서는 먹이를 찾아 민가의 지붕 속 까지 손수 납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엄지 손톱만한 머리를 가진 긴 짐승의 주둥아리에 열배도 더 커 보이는 참새 아빠가 단단히 물려 있습니다. 땅으로 내려와서 성찬을 들어야 하는데 태초에 원수가 된 하와가 푸성귀를 다듬는다고 길목에 앉아 있었으니 눈깔질만 하면서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척 없는 외딴집에 소름끼치는 공포감은 순전히 태초부터 원수였던 긴 짐승의 눈깔질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질퍽거리며 물을 먹을 대로 먹은 마당으로 뛰어가 긴 장대를 주어 들었습니다. 순간에 흠뻑 젖어버린 생쥐 꼴이 되었지만 왜 그랬을까요? 죽이느냐 살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인정사정없이 장대에 힘을 실었습니다. 그 사이 느낀 공포에 대한 보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갈겨버렸습니다. 프리스틱 홈통이 박살이 났습니다. 긴 짐승은 토방위로 툭 떨어졌습니다. 가운데 토막에 치명상을 입었는데도 도망을 가려고 필사적입니다. 윗 도막과 아래 도막이 따로 움직이기는 했으나 도망이라는 필사의 순간에는 의지가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얼른 진로 방향의 앞으로 가서 섰습니다. 뱀은 부상이 심해서 쉽게 방향을 틀지는 못 했지만 필사적인 노력으로 도망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민첩함이 하와에게 더 큰 공포감을 주었습니다. 장대로 그만 도리깨질을 치고 말았습니다. 탄탄한 탄력성이 주 무기였던 긴 짐승의 허연 배가 도리깨를 따라 오르지 못하고 뒤집히기 시작 했습니다. 긴 짐승의 입에는 아직도 독성으로 숨이 끊어진 참새아빠가 물려 있습니다. 이제는 하와가 제 정신으로 돌아 올 차례입니다. 귀머거리 할베가 메아리를 들었을 리는 없고, 아짐께서 메아리를 듣고 어서 가 보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할배는 오셔서 이가 한 개도 없는 잇몸을 아가처럼 웃어 보입니다. 귀가 어두우신 할아버지는 삶의 경험으로 얻은 모든 응답을 혼자서 중얼거리며 주고 받으셨습니다. 할배는 긴 짐승을 시체로 만든 장대를 다시 주워서 끝트머리에 걸쳐 들었습니다. 짧은 동아줄이 막대 끝에서 길게 늘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제서야 뱀은 참새를 놓고 혼자서 막대 끝에 달려 떠나갔습니다. 할배는 구더기가 생기면 파리가 득실거린다고 삽을 들고 마당을 벗어나 담 넘어 논가에 섰습니다. 마당에 서서 담 넘어로 할배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할배는 마당 앞 논둑에 구덩이를 파고 늘어진 뱀을 묻었습니다. 그제서야 잔득 놀라서 멈춘 심장에 산소가 드느라고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 했습니다. 할배는 돌아오셔서 죽은 참새를 그냥 맨손으로 집어 대밭에 던져 버렸습니다. 축축히 젖은 할배를 모시고 방으로 들어가 따끈한 커피를 대접했습니다. 그 날에 김치를 담가 스펀지 같은 밥을 맛있게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마루에 푸성귀를 올려놓은 기억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할배랑 커피를 맛나게 마신 기억은 오히려 더 선명합니다. 메아리만 듣고도 빗속을 마다하지 않고 할배를 보내주신 아짐은 몇 해 전에 짝을 잃고 혼자 되셨습니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라는 각복한 도시에 사느라고 아짐의 외로운 메아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아니 전혀 듣지 못 하고 있습니다. 객지에서 굴러들어 잠시잠깐 살다가 가버릴 저를 위해 할배는 많은 사랑을 주셨습니다. 할배는 만능 재주꾼이셨으니까요. 언젠가는 할배의 이야기를 써야만 합니다. 그것이 하늘에 계실 한글도 숫자도 못 읽는 할배에 대한 보답일 것 같습니다. ㅡ밤새도록 당신을 그리는 이 마음, 아침이 되어 당신을 찾는 이 간절한 심정! 당신의 법이 세상에 빛나는 때 세상 주민들은 비로소 정의를 배울 것입니다.이사야26,9ㅡ 참고ㅡ 흥부놀부전에 나오는 제비의 다리가 왜 부러졌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