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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행복한 왕자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19 조회수596 추천수11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1년 가해 그리스도 왕 대축일 - 행복한 왕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의미’, 즉 사람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자문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쾌락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명예를 위해 쾌락을 포기하기도 하고, 쾌락을 위해 돈을 포기하기도 하며, 돈을 위해 명예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결혼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과 결혼했다고 해서 평생 한 사람에게만 만족하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명예, 쾌락, 재물, 세속적 사랑 등은 완전한 행복이 아니기에 궁극적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찾아낸 것이 ‘행복’입니다. 만약 진정으로 행복하다면 그 행복을 포기하면서 돈이나 쾌락이나 명예나 결혼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 바로 ‘행복’이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며 사는 목적이며 삶의 의미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세상의 왕이 되어 모든 것을 갖게 되면 행복할까요? 아리스토텔레스가 깨달은 것과 같이 세상 것으로는 절대로 궁극적 행복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위대한 왕들은 누가 있습니까? 그리스에는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이 있습니다. 그는 인도까지 점령하고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죽을 때 자신의 손을 관 밖으로 내 놓아 사람들이 보게 해 달라며 이렇게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천하를 한 손에 쥐었던 알렉산더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진시황제는 13세의 나이에 왕이 되고 23세 때 영토 확장작업에 착수했으며 39세 때 세상을 통일하고 상상도 못할 만큼 큰 아방궁이란 궁궐을 짓고 유명한 만리장성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도 두려웠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서시라는 사람에게 소년 소녀 3천명과 많은 보물을 실은 배들을 거느리게 하여 동해에 있다는 신선이 사는 섬으로 가서 불로장생의 약초와 약을 구해오도록 하였습니다. 물론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그런 노력들을 했는데 유생들이 그것을 비웃었다 하여 수많은 서적을 불태우고 유생 460명을 생매장 시킵니다. 이것이 분서갱유입니다.

물론 그도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왕으로 보았으나 사실은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 주일로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왕이라면 어떤 나라의 왕일까요? 예수님은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하느님나라의 왕’이 되십니다. 하느님나라란 천국이고 행복의 나라입니다. 행복의 나라에서 왕이라면 가장 행복한 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행복의 왕’이 되셨을까요?

우리는 영국의 동화작가요 희곡작가인 오스카 와일드가 쓴 <행복한 왕자/1988년> 라는 동화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도시에 한 왕자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그 동상은 행복한 왕자(The Happy Prince)로 불러졌습니다. 행복한 왕자의 몸은 금으로 입혀져 있고, 두 눈동자는 사파이어, 그리고 허리에 찬 칼자루에는 커다란 루비가 박혀 빛났습니다.

어느 늦가을 날,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던 제비가 잠깐 쉬기 위해 왕자의 발등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놀란 제비가 하늘을 쳐다보니 그것은 비가 아니라 왕자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이었습니다.

제비는 울고 있는 왕자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행복한 왕자라고 하는데 왜 눈물을 흘리고 계시나요?” 왕자가 대답합니다. “궁전 안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이 편안하고 행복했었지. 그런데 죽고 난 후에 궁전 밖에 펼쳐진 세상은 모두 힘들고 슬픈 것뿐이란다. 몸이 아파 사경을 헤매는 사람, 굶주린 아이에게 밥을 줄 수 없는 불쌍한 엄마의 모습, 가난한 문학가가 글을 쓰다가 굶주림과 추위에 쓰러져있는 모습, 성냥팔이소녀가 성냥을 하나도 팔지 못해 떨고 있는 모습들...,” 왕자는 제비에게 이들의 모습을 보고 밤마다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왕자는 제비에게 부탁을 합니다. “칼자루에 박혀있는 루비를 뽑아다가 병든 아이를 간호하는 엄마에게 갖다 줄 수 있겠니?” 제비는 울고 있는 왕자의 모습이 너무 갸륵하고 예뻐서 들어줍니다.

제비는 왕자의 부탁을 들어주고 남쪽나라로 날아가려고 할 때 다시 부탁합니다. “내 눈에 박혀있는 사파이어를 가져다가 가난한 문학가에게 줄 수 있겠니?” 다음날도 왕자는 제비에게 부탁합니다. “제비야, 내 남은 한 쪽 눈을 떼어서 광장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에게 가져다줄 수 있겠니?” 제비는 그렇게 하였고 이제는 왕자가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왕자님이 장님이 되셨으니 제가 옆에 있어드릴게요.”

왕자는 제비에게 순금으로 되어있는 자신의 몸을 떼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였습니다.

어느덧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왕자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남쪽나라로 떠나지 못한 제비는 추위에 죽고 맙니다. 그 순간 납으로 만들어진 왕자의 심장이 반으로 깨집니다. 사람들은 깨져버린 왕자의 동상을 가져다가 용광로에 녹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심장은 녹지 않고 남습니다. 사람들은 왕자의 심장을 제비가 죽어있는 쓰레기더미에 던져버립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왕자의 동상이 있던 자리에 서로 자기의 동상을 세우고자 싸움을 벌입니다.

이 때 하느님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건 두 가지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천사는 바로 쓰레기더미에 있는 죽은 제비와 왕자의 심장을 가져갑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제비에게는 달에서 노래를 하도록 하고, 왕자는 천국에서 찬양을 하도록 복을 주었다는 동화입니다.

 

사실 오스카와일드는 ‘행복한 왕자’를 통해 약한 자와 가난한 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영국사회를 풍자적으로 그린 것입니다.

행복한 왕자가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당신은 죽으셨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사랑 가득한 아드님을 천상예루살렘의 왕으로 앉히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행복한 왕자인 당신이 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착한 제비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떼어 나누어주지 않으면 결코 당신과 함께 하늘나라에 오를 수 없다고 말입니다.

사랑을 베푸는 사람만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고, 행복을 주는 사람만이 행복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다만 이미 정해져 있는 대로 당신을 닮은 양들은 오른 편에,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저항한 염소들은 왼편에 세울 뿐입니다.

양들도 염소들도 자신들이 착한 일을 한 것과 나쁜 일을 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선행이나 악행은 억지로 하는 것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에 따라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들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이 오히려 선행 한 것을 더 많이 기억하고, 선인들이 오히려 잘못한 일들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각자 자신이 생긴 대로 살아가기에 한두 가지 착한 일 한 것 가지고 안심해하며 있을 수 없습니다. 먼저 자신이 사람인지 원숭이인지, 양인지 염소인지 잘 살펴야합니다.

만약 꽃밭에 꽃과 아주 조금의 배설물이 있다고 합시다. 한 마리의 꿀벌과 한 마리의 똥파리가 그 곳을 향해 달려갑니다. 당연히 꿀벌은 꽃을 향해, 똥파리는 배설물을 향해 날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 안에서도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면이 먼저 보인다면 그 사람의 본질은 꿀벌보다 똥파리에 가까울 것입니다. 눈에 이웃의 나쁜 면만 보이는데 어떻게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수 없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면 그 사람이 그것으로 술이나 마약을 사먹을 것이라며 돕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도 자신의 본질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질이 쉽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제비처럼 왕의 뜻을 따를 때야만 같은 영광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왕의 뜻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쇠가 자석에 오래 붙어있으면 그것도 자석으로 변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만 붙어있어야 마치 자석처럼 우리의 본질이 변화하게 됩니다.

제비가 행복한 왕자와 붙어 있으며 그 분과 함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왕의 영예를 함께 누리고 되는 것처럼,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합시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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