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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남는 것은 허무가 아니라 사랑이다 - 11.2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21 조회수388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1.11.20 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주간)

에제34,11-12.15-17 1코린15,20-26.28 마태25,31-46

 


남는 것은 허무가 아니라 사랑이다

 

결국 남는 것은 허무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주님의 최후심판 대에서 사랑으로 심판 받는 우리들입니다.

 


오늘은 연중 마지막 주일이자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역시 종말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종말의 빛에 지금 여기를 비춰 볼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확연히 들어납니다.

또 연중 마지막 주간인 34주간은 성서주간이기도 합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알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왕을 잘 알고 사랑하기 위해 평생 성서공부는 필수요

특히 이번 주간은 성서에 각별히 맛 들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닫는 것은
말씀 공부와 묵상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세상 나라에 살면서도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그리스도 왕을 모시고 사는 우리들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왕은 사랑의 왕입니다.

다스리고 지배하는 왕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는 왕이십니다.

 


며칠 전의 체험이 저에겐 신선한 깨달음이었습니다.

면담 성사 후 꼭 필요하다 싶어 한 자매에게 제 신간을 선물했습니다.

사인을 할 때 받을 자매의 이름만 적기가 웬 지 허전하여 물어봤습니다.

“자매님, 이 이름 앞에다 ‘사랑하는’이란 말을 쓸까요, 말까요?”

활짝 웃으며 자매님의 즉각적인 대답이었습니다.

“써 주세요.”

이게 사람입니다.

누구나 사랑받고 싶은 본능을 지닌 사람입니다.

승낙을 받은 후 자신 있게 이름 앞에

‘사랑하는’이란 글을 써넣으니 참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제인 저를 통해 자매님에게 선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후 책을 선사했습니다.

다음 날 아버지와 함께 미사에 참석한 그 자매를 산책 중에 만나

이름을 부르니 반색하며 물었습니다.

“어떻게 제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즉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자매님의 이름을 기억하듯 하느님은 자매님을 기억하십니다.

자매님의 어려움도 하느님이 아셨으니 잘 해결될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은, 그리스도는 이런 분이십니다.

그리스도 왕은 하느님 사랑의 화신입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사랑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과연 사랑의 왕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은 그리스도 왕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그리스도 왕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보다 먼저 한량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살아있음도 주님의 사랑 덕분입니다.

주 그리스도 왕 만이 유일한 목자요 우리는 그의 양떼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화답송 후렴처럼

주님 사랑만이 우리를 충만하게 합니다.

 


깨달으면 온 누리에 가득한 주님의 사랑이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한 구절만이 선명히 보일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하느님 사랑 안에 살아 온 우리들입니다.

깨달으면 충만한 사랑인데,

깨닫지 못해 하느님 사랑 안에 숨 쉬고 살면서도

사랑에 목말라하는 모순적 사람들입니다.

 


바빌론 유배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하느님의 사랑을 일깨워주며

용기백배 희망을 주는 예언자 에제키엘입니다.

다음 예언자를 통한 하느님의 말씀은

그대로 그리스도 왕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 이제 내 양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것에서 내 양떼를 구해 내겠다.

내가 몸소 내 양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바로 하느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이런 하느님의 사랑은 사랑의 그리스도 왕을 통해 그대로 실현됩니다.

거듭 되풀이되는

‘나’의 하느님 주어와 목적어 ‘내 양떼’가 가리키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의 양떼에 대한 결연한 의지의 사랑이 피부에 와 닿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왕을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잘 깨달을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평생 공부가 바로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공부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평생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배우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 왕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살 길은 사랑뿐입니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남는 것은 허무 아니면 사랑뿐일 것입니다.

 


사랑 없어 공허하고 허무하고 무의미한 삶입니다.

무기력하고 무감각한 삶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끊임없이 주입되는 사랑이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의 원천입니다.

 


그리스도는 사랑의 샘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주님께 받은 사랑을 다시 이웃 사랑으로 쏟으라는 말씀입니다.

이웃사랑에 앞서 하느님을, 그리스도 왕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온갖 수행을 통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우리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할 때,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앞세우지 않을 때

이웃에 대한 사랑도 저절로 흘러갑니다.

 


바로 곤경 중에 있는 당신 양떼의 사람들을 통해서 주님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그리스도 왕은 저 하늘 높이 왕좌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라

곤궁 중에 있는 이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미사 중, 성체만이 아니라

곤궁 중에 있는 이들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최후심판 정에서 다음 주님 말씀을 통해 분명히 들어납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 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다.”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옥좌에서 심판하시는 그리스도 왕이 이렇게 곤경 중에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셨다는 사실이

신비 중의 신비이고 놀랍고 놀라운 일입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놀라서 묻는 의인들에 대한 주님의 말씀이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종파를 초월해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무뎌진 마음을 각성케 하는 복음입니다.

믿음의 유무를 떠나 곤궁 중에 있는 가장 작은이들을 내 형제라 하며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주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작은이들이 그리스도 왕의 형제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런 곤궁 중에 있는 형제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

주님께 대한 사랑의 최고 보답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더불어

이런 곤경 중에 있는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함께 할 때

온전한 하느님 사랑입니다.

주님의 형제들인 작은이들에 대한 무시와 모독이

바로 주님께 대한 무시요 모독임을,

또 하나의 살아있는 성체 모독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주님은 인간 품위와 존엄성의 보루임을 절감합니다.

잘났듯 못났든 사람은 모두가 하느님의 모상이요 자녀임을

절절히 깨달았던 그리스도 왕이십니다.

 

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된 그리스도의 왕국이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그리스도의 왕국입니다.

 


‘이미’ 와 ‘아직’ 의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종말이 될 때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

 


이미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시는 하느님을 위해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연중 마지막 34주간이 끝나면 전례력으로 새해 대림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우리의 삶을 성실히 점검하고

한 해를 매듭지으라고 최후심판의 복음입니다.

 


문득 생각나는 주님과 베드로와의 대화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그대로 오늘의 우리를 향한 말씀 같습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곤궁 중에 있는 주님의 양들을, 형제들을 사랑하고 돌보라는 말씀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의 최후심판을 앞당겨 우리 사랑의 삶을 셈 바치는 시간이요,

우리 모두 언젠가 최후심판 정에서 듣게 될 그리스도 왕의 다음 말씀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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