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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122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22 조회수304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11월 22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5-11

그때에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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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우리 생활에 하느님과 연관된 것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을까요? 하느님을 나타내는 것은 더 없이 거룩하게 꾸미고 하느님께 바쳐지는 것은 한 없이 아름다운 것들로 치장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이는 한 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성전을 꾸밀 때도 마찬가지 기준이 됩니다.

교회가 아무리 빈약한 재정에 있다하더라도 하느님을 드러내고 하느님께 바쳐지는 것만큼은 최선을 다해 꾸미고 표현하려 애를 씁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사정이 낫다 싶은 곳일수록 더 높이 더 화려하게 성전을 꾸며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의 가치를 높이려 하는 것은 당연한 듯 보입니다.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반대할 사람도 없어보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세운 지극히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 그 성전을 두고 사람들은 자랑스러운듯 예수님께 성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때에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엄청난 시간이 걸려 하느님께 바쳐졌고, 그 시간만큼 아름답고 거룩하고 웅장한 장소인 성전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성전이 남아있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성지순례 장소가 되었을것입니다. 터만 남은 지금에도 성지순례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폐허를 이야기하시듯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야기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일시에 공포로 몰아넣는 듯 한 예수님의 예고는 역사 속에 실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사건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이 성전만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닌듯 싶습니다.


사람들이 말한 아름다운 성전은 아름다운 돌들과 바쳐진 예물로 꾸며졌다고 합니다. 그 아름다운 돌들은 하느님이 주신 땅에서 얻은 하느님 구원의 징표일 것입니다. 그 위에 그리고 그 주위에 꾸민 화려한 장식들은 사람들의 정성이고 마음이 드러난 예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의 은총 위에 사람들의 정성이 가득한 곳이 성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엄청난 성전에 저주와 같은 예고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언제 그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두려워하며 그 일이 일어날 시기를 짐작하고자 합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구체적인 상황들을 말씀해 주십니다. 혼란스러운 상황, 도대체 무엇이 맞는건지 하나도 짐작할 수 없는 상황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 벌어지는 싸움들, 그리고 세상에서 상상할 수 없는 천재지변의 끝에 그 일이 일어나리라는 말씀들입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이라면 능히 '지금이 아닐까?'하는 두려움을 지니게 마련입니다. 실제 지금 이런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종말을 이야기하는 무수한 종교와 지도자들, 예언이 일어나고 있고 곳곳에는 전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핵이라고 말하는 우리 스스로의 파멸의 싸움의 가능성은 점점 더 커져만 갑니다. 세상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려는 힘센 나라가 있고,  반면 많은 이들이 기근에 시달리며 살아있는 것이 유일한 희망인 곳도 늘어갑니다. 세상의 기후가 바뀌고 그 속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람들의 힘 없는 모습들도 보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떠올리면 말씀대로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그날에 대한 예수님의 이야기는 결국 그 날이 언제라는 확증을 주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은 성전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시는 듯 들립니다. 


성전이 허물어진다는 말에 그 날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들릴리 없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 하느님을 아는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말씀하고 계시며 이 상황들은 하느님을 믿는다 말하면서도 자신의 살길을 도모하고 싶은 이들이 결국 자신들의 마음을 드러내는 일들로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미 이런 모습들을 보여주신 적이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그 성전을 장사꾼의 집으로 만들어버린 이들의 예물과 예물을 사고 팔 환전상들을 흩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인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화려하고 거룩한 집에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그것은 하느님을 믿는다 말하고,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셨다 말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성전을 하느님의 집이 아닌 두려운 심판자의 집으로 만들어 예물로 그분의 기분을 맞춰드리고 지속적인 보호를 얻고, 징벌을 피하는 수단으로 삼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느님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하느님의 눈을 피하듯 성전 밖에 간단히 예물을 살고 팔 수 있도록 온갖 장사치들이 진을 치고 또한 가볍게 성전에 와서 예물을 구하려는 이들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누구도 이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일어나는 일들은 성전은 더 견고해졌고, 더 아름다워졌으니 말입니다. 


그런 이들이 어찌 사랑하며 살겠습니까? 결국 자신들의 성공을 하느님의 보호로 여기고 싶을테고 필시 그 반대편에 저주받은 이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이웃에서 지역으로 나라로 발전해간다면 이는 분명 보이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두고 싸움으로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하느님의 보호를 이야기하고 구원을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하느님의 말씀을 이야기하고 구원의 길이라는 수많은 증거자와 예언자와 심지어 구원자가 등장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사람들의 불안함은 확실한 살 길을 찾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들이 세운 성전이 성전이겠습니까? 하느님이 그들의 성전 안에 갇히셔서 당신이 당신과 싸우는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이가 세운 성전이라는 이유로 또 다른 하느님을 믿는 이가 그 성전을 허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말할 것입니다. "저 안에 있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당연히 맞은 편에서도 그렇게 하겠지요.


결국 싸움은 하느님이 벌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벌이는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이 오실 날 절망적인 모습은 우리 스스로 성전을 허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주신 땅 조차 우리 스스로 망치게 될 날 오히려 하느님은 파멸에 싸여있는 이 세상의 싸움을 그치게 하시려 오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옛날 우리가 동화처럼 들은 노아의 방주 때, 사람 때문에 세상을 멸하시려던 하느님의 탄식을 떠올리게 되는 말씀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 속에 등장하는 파멸의 징조는 사람 때문에 하느님이 벌이시는 징벌의 파멸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서로를 죽이고 세상을 죽이는 상황에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그날이 언제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미 우리는 그 절망스런 상황을 우리 스스로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성전을 자랑하다 성전이 허물어질 날을 두려워하며 도망부터 가려는 이들의 모습이 벌이는 솔직한 실망스런 상황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면 멈추고 막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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