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해 연중 34주간 수요일 - 성령님이 증거하신다
독일 베를린의 뒷골목 한 모퉁이에서 거지소녀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서투른 솜씨로 바이올린을 구슬프게 켜며 동전을 구걸했지만 소녀의 앞에는 골목의 꼬마들만 모여서 구경할 뿐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냉랭한 표정으로 자신을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고 기운이 빠져 힘없이 팔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어떤 젊은 신사가 다가오더니 소녀의 바이올린을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익숙한 솜씨로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답고 황홀한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거리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고 그가 연주를 마칠 즈음이 되었을 땐 몇 겹의 사람들이 담을 이룰 정도였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은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며 돈을 던졌습니다. 젊은 신사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바이올린과 돈을 소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거리 저쪽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젊은 신사가 바로 아인슈타인 박사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해 드릴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선물은 그 분의 잃은 자녀들을 데려다 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전해주니 선교만큼 큰 사랑도 없고, 하느님의 자녀들을 다시 찾아주니 그것만큼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능력엔 한계가 있음을 깨달아야합니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증거하고 전해야 하는 하느님은 누가 가장 잘 알까요? 그것도 하느님뿐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잘 안다고 그 분을 자기 나름대로 증거하려한다면 하느님이 아닌 황금 송아지를 전해주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무한한 하느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하느님의 형상은 황금 송아지에 머물게 됩니다.
예수님까지도 아버지를 증거하시면서 당신은 아버지께로부터 들은 대로만 말할 뿐이고 본 대로만 증거할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바오로 사도는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은 사람의 영이고,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것은 하느님의 영’뿐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성령님께서 당신이 아시는 하느님을 증거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을 온전히 증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성령님을 모시고 난 후에야 세상에 하느님을 증거하는 공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지만 그들은 밖에 나가 그리스도를 증거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임하시자 그들은 밖으로 뛰쳐나가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느님을 증거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스스로 하느님을 증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교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증거할 기회가 왔을 때 미리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조엘 오스틴이 쓴 ‘긍정의 힘’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한 미국 유명 골프선수가 사우디아라비아 왕에게 초청되어 골프를 함께 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감사하는 의미로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골프선수는 처음엔 거절하였지만 나중에 마지못해 골프채를 하나 선물해 주십사고 했습니다.
좋은 채를 선물 받을 기대에 부풀에 미국에 돌아와서 받게 된 것은 한 장의 편지였습니다. 그 안에는 미국 유명 골프코스를 선물로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도 이렇게 상상을 초월할 능력이 있는데 하느님이야 어떻겠습니까?
혼자서 하려고 하다가 하느님이 이 무한한 능력을 묻혀버리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이올린 연주를 잘 할 줄 모른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오셔서 대신 연주해 주시고 많은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