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123 | |||
---|---|---|---|---|
작성자김용현 | 작성일2011-11-23 | 조회수324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1년 11월 23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하느님을 믿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꼽는 시대입니다. 그 행복 안에는 세상에서 누리고 싶어하는 중요한 가치들이 자리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저 마음이 편안한 상태의 행복이 아니라 행복할 만큼 가지고, 누리고 살 수 있을 정도를 하느님을 통해 얻는 것이 하느님을 믿는 행복이라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여러가지 말로 치장을 해보지만 결국 현실의 이익을 하느님이 챙겨주시는 것이 사람들이 이해하는 행복의 중요한 몫이라는 것은 피해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 행복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곤 합니다. 예수님 말씀 속에 하느님을 믿는 이들의 미래는 행복 보다는 하나같이 억울하고 기가막힌 일들입니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우선 예수님의 말씀 속의 사람을 한 두 걸음 떨어져서 살펴봅시다. 하느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여러가지 표현으로 말할 수 있지만 "착하게 산다"는 것만은 틀림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로 박해를 당하고 끌려가고 고발을 당하는 일들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이렇다면 그렇게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착하게 살아 가진 것도 나누었는데 어리석다 조롱당하고 사라진 재물 만큼의 무시가 따라오고 심지어 내 것을 가져간 이들이 내 위에서 나를 지배하려한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그리고 한사코 물어봅니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분명 하느님에 대한 고백 이전에 자신의 억울한 상황에 부딪혀야만 합니다. 도대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 이유에 대해 묻는 도둑과 같은 이들 앞에서 취조를 당해야 하니 말입니다. 억울한 마음이 밀려들고 질문을 던지는 이들의 잘못을 아는 입장에서는 말문부터 막힐 일입니다.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 이에게 더 답답하기만 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도대체 무엇을 증언해야 할까요? 답답한 마음에는 우선 화부터 내야한다는 생각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멋진 이야기라곤 떠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황당한 상황에서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 두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이 말도 안되는 장면에서 벗어나와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생각하며 이 장면이 실제 우리의 상황이 된다면 어떤 마음일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좋은 마음을 가지는 것과 세상이 우리에게 이렇듯 모진 짓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사랑을 배웠고, 그리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더 가진 사람이 우위에 서고,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치열하게 싸워서 성공하고 힘을 가진 사람이 만드는 세상이라는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싸움으로 해결하고 성공으로만 행복을 말하는 세상에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자신을 내어 줌으로 함께 사는 것이 삶의 기준인 사람들이 만난다면 하느님의 사람은 우선 가진 것을 다 빼앗기게 마련입니다. 그런 다음 그런 행동에 조롱을 당하게 되고, 아울러 가진 것을 기준으로 지배를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를 지나치면 하느님의 사람은 분명 힘 없고 좋기만 한 사람이 되고 말겁니다. 그러나 빼앗기지 않는 것이 있어서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가진 사람과 못가진 사람에 대한 차별이 없고, 자신보다 더 가진 이를 그것을 기준으로 섬기거나 우대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보다 못한 이들도 자신처럼 사랑하면서 세상의 질서를 간단히 무시하고 넘어서는 모습으로 서게 될 겁니다. 혹여 그런 사고방식이 우월감에 차 있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것은 가진 것도 없는 이들이 자존심이라도 지키는 문제가 아니라 가진 것도 없는 이들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이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와 같은 처지의 많은 죄인들과 가난한 이들이 가진 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박해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에 불만은 가장 가까이에서 서로를 소유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부터 터져나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공격해서 무너뜨릴 무기도, 생각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멀리서 쳐다보면 말도 되지 않는 이 상황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아주 당연하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 상황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상황을 만든 것은 오히려 세상을 알고도 하느님을 따른 우리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를 박해하는 이들이 바로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이며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바뀌지 않는 사실이기에 화를 낼수는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적대자도 맞설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 언변과 지혜는 무엇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언변과 지혜가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무찌르는 형태는 아닐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찌르는 이들을 안을 수밖에 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서 나타낼 수 있는 말이 무엇일지는 알 수 없지만 오직 우리가 그 자리에서 바랄 수 있는 것은 우리를 박해하는 이가 우리의 마음을 알고 그들도 하느님을 알고 자신들의 삶을 바꾸어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는 일 뿐입니다.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이들과의 말다툼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에겐 어떤 두려움이 있을까요? 죽음? 고통? 그 모든 것은 분명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조차 우리는 억울함도 가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우리에게 내밀 것이 비수일 수도 있음을 이미 알고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마음이 변하지 않으므로 우리에겐 사랑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이 그들에게 전해질 모든 말들의 전부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상황에 맞닿은 한 사람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우리에게 걱정말라 하신 예수님 당신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셨지만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까지도 빼앗기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한 순간에도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억울함과 치미는 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인내력이 우리보다 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우리의 죄를 물을 자격을 지니시고도 징벌이 아닌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의 언변에서 우리는 남은 모든 이를 위한 사랑을 들었고, 용서의 이야기를 들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성체성사와 십자가로 세상을 바꾸신 그분의 지혜를 보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부활로 우리에게 있는 마지막 두려움까지 떨쳐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