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어린 시절 내게 있어서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엄마따라 시장가기’를 그 첫째로 꼽는데 아무런 주저함도 없겠다. 시장 입구에서 ‘때밀이 타올’을 파는 아저씨로부터 시작하여 야채전과 어물전을 지나 모든 물건들이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흐르는 기름집, 생선가시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던 옛날 오뎅집, 기계 소리 요란한 떡 방앗간, ‘탕탕’ 도마에 칼 부딪히는 소리가 날 때마다 살점이 튀어 올랐던 닭집을 거쳐 ‘부엉이 엄마’가 하는 신발집에 도착할 때까지 온통 신기하고 재밌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시장을 구경하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한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었다. 엄마가 돈을 치를 때 잠깐 손을 놓으실 때가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엄마 손을 잡을 때만큼 손을 쳐든 채로 시장 상인들의 소리에 빨려 들어가듯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한참이 지나서야 엄마에게 발견되는 날이면 가끔 등짝을 두들겨 맞는 고통이 따랐다. 아무튼 정신만 바짝 차리고 엄마를 잘만 따라다니면 시장구경은 환상적일만큼 재밌는 일이었다.
세 살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나는 지금도 시장구경하는 것을 거의 광적으로 즐긴다. 이 곳 로마에는 주일마다 서는 만물시장이 있다. 주일미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붐비는 시장에 들어서서 ‘싸구려’를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빙긋이 웃음이 새어나온다.
하지만 한 가지,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다보니 자연스레 남의 호주머니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또한 많다. 워낙 물건을 잘 도둑맞는 탓에 항상 이 곳에 올 때는 아예 지갑도 가방도 다 벗어놓고 돈만 몇 푼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손을 집어넣고 걸어 다닌다. 아무리 기술이 좋다고 해도 바지 앞주머니에 손으로 꼭 쥐고 있는 돈을 훔쳐갈 사람은 없다.
지난 주일에도 여전히 세 시간 가량을 시장 구석구석 누비며 돌아다녔는데 주머니 안에 있는 돈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하하. 그럼 그렇지. 이렇게 돌아다니니까 도둑맞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시장을 백배 더 즐길 수 있어 좋다.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 데 어떤 젊은 친구 하나가 양 손에 아주 매력적인 최신형 휴대폰 하나씩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사가라고 끄는데 이상하게 나한테만 아무 소리를 하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없어 보였나'하는 생각에 발길을 돌려 다시 그 곁을 지나갔는데도 또 나한테만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세 번째 되서야 비로소 나에게 휴대폰을 내밀더니 싼 값에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애초에 살 마음이 없었지만 순전히 재미로 그 친구가 부르는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값을 불렀더니 자기가 몹시 급하다면서 조금만 더 쓰고 가져가라고 통 사정을 했다. 된다, 안 된다 흥정 끝에 결국 내가 제시한 헐값에 휴대폰을 사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늘은 도둑도 안 맞고 게다가 최신형 휴대폰까지 거의 줍듯이 싼 가격에 구입했으니 발걸음이 흥겨울 수밖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혹시 휴대폰 필요하면 말하라는 메시지를 남겨 놓고 한 번 더 그 매력적인 휴대폰을 보고자 상자를 펼쳤더니 세상에 하느님 맙소사...... 분명히 내가 보는 앞에서 휴대폰 세트를 상자에 넣고 비닐 봉투에 넣어서 내게 건네 준 것 같은데 펼쳐보았더니 비슷한 무게의 물주머니가 상자에 들어있었다.
우리들 세상 살아가는 것이 시장 구경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온통 재밌는 일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참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이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하느님과 붙잡은 손을 놓지 마시라.
탐욕에 영혼을 빼앗기지 마시라.
세상 구경 잘 하고 빈손으로 왔을 때처럼 빈손으로 돌아가면 적어도 본전.
그래도 흔적을 남기고 싶다면 마음을 내 주시라.
“사람은 세상에 올 때처럼 빈손으로 갈 것뿐이라, 바람을 잡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전도5,19)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