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이순의(leejeano) 번 호 7536 작성일 2004-07-22 오전 12:20:22
2004년7월22일 목요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 ㅡ아가3,1-4;요한20.1-2.11-18ㅡ
(145) 사랑하는 너에게
이순의
안녕!
갑자기 편지를 쓰려고 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내가 흐르는 눈물의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기쁜가?
아니면 슬픈가?
어제 우연히 너의 소식을 들었다.
당혹스러워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안절부절못하였다.
그리고 곧 내 자신에게 물었다.
위로가 필요한가?
용서할 것이 아직도 남아 있는가?
오늘까지도 눈물이 흐른 이유에 정확한 답을 달을 수가 없었다.
3년밖에 안된 네가 중요한 중책을 맡았을 때부터 다소 우려감은 있었다.
그래도 널 너무 아까워했으므로 그 중책이 너의 몫이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자랑이었다.
이제는 시간이 참으로 번쩍하고 흘러버렸다.
너의 소식은 나를 울리기에도 충분했다.
가셔야 할 분이 너를 위로해 줄 기회가 있었다는 짐작이다.
누구의 위로도 너에게는 날리는 지푸라기였을 것이야.
무엇보다도 지금쯤은 훌쩍 뛰어 넘어 심성으로 부터 성장한 냄새를 맡고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아려오는구나!
어떠니?
좀 달라 보이지 않니?
그 때 힘들어서 너무 힘들어서 숨어 울던 모습이 이제는 좀 어려 보이지 않니?
자신의 어린 모습을 돌아 볼 여유가 생겼다면 넌 지금 충분히 치유된 영혼일거야.
치유 받았기를 바란다.
작은 흉터가 남아 있더라도 그 흉터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너그러움으로 신앙의 소명을 완성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주님의 종을 사느라고 바쁜 봉사자들을 위해 너의 부부가 성찬의 자리를 마련하여 수고를 격려하는 봉헌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냥 그냥 바보처럼!
가시는 어른께서 그런 자리에 종종 참여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만감을 평온케 한 것이다.
그런 사석이 때로는 치유의 약방이기도 하지!
어른의 마음에 약을 담고 오셨다면 어느 틈에든 너에게 약발이 섰을 거라는 아슬아슬한 감동에 이제야 다리를 펼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신앙의 연륜이 짧은 신자들에게 큰 상처가 되는 활동은 좀처럼 드러나기도 어렵고 치유받기는 더 어려운 것이 교회의 현실이다.
그래서 세례초기 냉담은 그만큼 큰 손실을 가져오는 위기라고 말하고 싶구나!
그걸 잘 참고! 이겨내고! 감당하고!
좀 더 넓은 물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다는 안부는 안도의 숨을 쉬기에 충분했다.
너만의 치유가 아니었을 게다.
가시는 분의 짐도 한 보퉁이는 벗고 가실 거라는 감회에 감사를 드렸다.
무겁고 많은 짐 중에서 덜어드릴 수 있는 몫이 너에게 있었다는 역할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제는 좀 알겠니?
신앙생활이라는 것!
종교에 속한 보속이 그런 것이었다는!
어떤 면에서는 네가 부럽단다.
그런 식으로라도 치유라는 명약을 서로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
어부지리로라도 그 명약을 나눠 갖고 싶기도 하구나.
주님께서 허락하신 은혜를 기꺼이 나눌 줄 아는 배려에 대하여 찬사를 보낸다.
초대된 봉사자들도 초대한 너희 부부에게도 좋은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착한 너!
고맙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응답해 줄 수 있겠니?
"형님!" 소리를 들은 지가 아련하다.
ㅡ성안을 순찰하는 야경꾼들을 만나, '사랑하는 나의 임 못 보셨소?' 물으며 지나치다가, 애타게 그리던 임을 만났다네." 아가3,3-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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