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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24 조회수892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11월 24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When these signs begin to happen,stand erect and raise your heads
because your redemption is at hand.
(Lk.21,28)


제1독서 다니엘 6,12-28
복음 루카 21,20-28


 만약 자신의 집에 불이 나서 딱 한 가지만 가지고 나올 수 있다면 무엇을 들고 나오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상상을 해보세요. 잘 걷지 못하는 내 갓난아기와 아주 비싼 렘브란트의 그림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아기를 구하겠지요. 그렇다면 렘브란트의 그림과 동네 도둑고양이가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때에도 생명이 있는 고양이를 구하겠습니까?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렘브란트의 가치는 어마어마하고 반면에 도둑고양이는 나와 전혀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생명의 가치는 하느님께서 주신 것으로 이 세상의 어떤 물질적인 것들과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미국의 유명한 방송작가 겸 제작자인 다이앤 프롤로브(Diane Frolov)가 했던 말을 보고서 위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불난 집에서 고양이와 렘브란트의 그림을 봤다면 고양이를 구해야 한다. 고양이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실제 우리는 물질적인 것들과 세속적인 것들에 항상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생명을 지키기 보다는 돈을 지키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는 식의 말로써 스스로 위안을 삼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생명이었습니다.

우리가 심판을 위해 주님 앞으로 나아갈 때 과연 무엇으로 평가받을까요? 많이 벌었던 돈으로 아니면 내가 움켜잡았던 높은 명예와 지위?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랑의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생명을 얼마나 지켰는지를 주님께서는 평가하시고 우리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예루살렘 멸망의 장면을 우리들에게 소개하시는 것이지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제 언제 올지 모르는 그 날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주 하느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그 뜻을 기억해서 잘 실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우리들에게 필요한 준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덜렁대고 또 건망증이 심해서 자주 실수를 하는 엄마가 있었습니다. 하도 실수를 많이 하다 보니 가족들이 항상 긴장을 하고 있었지요. 그날 역시 엄마는 또 하나의 실수를 했습니다. 글쎄 건망증으로 인해 냉장고에 휴대전화를 넣은 것이지요. 이러한 모습을 본 아들이 화가 나서 엄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도대체 엄마는 제대로 하는 것이 뭐가 있어요?”

그러자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지요.

“아들, 엄마가 제대로 한 일도 있어. 널 낳았잖아.”


그렇습니다. 이 엄마의 모든 실수, 그러나 아들을 낳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회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너무나도 많은 죄와 실수를 범합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귀한 나를 받아 주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생명을 가지고 있는 나의 이웃 역시 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종말을 위한 가장 훌륭한 준비가 될 것입니다. 



 
 
 

사랑이란 죽을 때까지 평생 사용할 수 있는 단단한 도장이다(크누트 함순).




고해성사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수위권을 받는 장면

이제 다음 주부터 예수님의 오시는 날을 기다리는 대림시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실 주님을 잘 맞이하기 위해 판공성사를 보지요. 이 고해성사에 대한 어떤 신부님의 황당한 경험을 들은 적이 있어서 이 자리를 통해 공개합니다(고해성사 비밀을 누설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자매님께서 고해를 하기 위해 고해소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작게 죄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신부님께서는 “자매님, 자매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죄를 들을 수가 없어요. 제가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크게 말씀해주시겠어요?”라고 말씀하셨지요. 이에 자매님께서는 화를 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네요.

“신부님, 참 이상하네요? 왜 남의 사생활에 그렇게 관심을 갖고 계신 거죠?”

고해성사는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요. 절대로 혼자의 독백을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내가 죄를 솔직하게 주님의 대리자인 사제에게 고백한다면, 주님께서도 쿨(Cool)하게 나의 지저분한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절대로 사생활에 관심이 있어서 죄 고백을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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