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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십자가 저 너머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24 조회수800 추천수13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1년 가해 연중 34주간 목요일 - 십자가 저 너머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인 엘레나는 ‘낙관적 인생관’과 ‘재치’로 남편에게 끊임없이 용기를 준 여성이었습니다. 10세 때 고아가 된 그녀는 20세에 결혼해 6남매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가 가장 사랑했던 한 자녀가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비탄에 잠긴 남편에게 그녀는 “여보, 아직도 우리가 사랑할 아이들이 다섯이나 남았잖아요.”라고 위로했습니다.

나중에 루스벨트는 관절염으로 걷지 못하게 됐습니다. 휠체어에 의지하는 불구의 몸이 됐습니다. 그때도 엘레나는 웃음을 잃지 않고 남편을 격려했습니다. 한번은 루스벨트가 엘레나에게 “지금도 나를 사랑하오?”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엘레나가 재치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럼 내가 당신의 다리만 사랑했나요?”

이렇게 어떤 사람들은 어두운 면을 먼저 보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밝은 면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비관은 그저 비관적인 결과만 낳을 뿐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다니엘이 곤경에 처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바빌론 유배 때 남의 나라 땅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신앙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임금이 이방인인 그를 아끼는 것을 알자, 그것을 시기한 관료들은 그가 임금님과 자신들의 나라 신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고 기도한다고 일러바칩니다.

왕은 그를 구하고 싶었으나 다니엘을 미워한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그를 사자 굴에 넣게 됩니다.

사자 굴에 들어간 다니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걱정 근심, 두려움에 쌓여 있었을까요? 그는 하느님과 임금에게 아무런 잘못을 한 일이 없었음으로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순교자들처럼 죽음 앞에서 당당하고 편안했을 것입니다.

잘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낙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을 양심이 알기에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안 좋은 것을 주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통 중에서도 언제나 낙관론자셨습니다. 즉 다시 부활하리란 확신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당신 뜻에 순종하는 아들을 죽음 가운데 내버려 두실 하느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예루살렘을 포함한 세상의 종말에 대해 예고하십니다. 예루살렘이 로마 군대에 멸망하여 오랜 시간 동안 이방인에게 짓밟힌 것처럼 세상의 종말도 태평성대 때에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쟁과 기근, 지진과 해일 등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만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만 들어도 겁이 나지만 예수님은 겁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주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마치 해산하는 어머니가 진통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태어날 새로운 생명을 보리라는 희망에 그 고통을 참아내는 것처럼, 힘든 때가 바로 더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야 할 희망의 때인 것입니다.

산의 마지막 정상을 오르기 직전이 가장 가팔라 지치고 힘든 것처럼 영광의 직전에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편한 오솔길을 가면서 정상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길이 가팔라진다는 것은 정상이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그런 희망은 인내를 낳게 합니다.

비관론자는 희망이 없기에 편치 않은 마음으로 쉬운 오솔길을 계속 걸을 뿐이지만, 낙관론자는 희망이 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가파른 길을 선택합니다.

 

어떤 사람이 당대의 헤비급 챔피언인 제임스 콜벳에게 어떻게 해서 챔피언이 될 수 있었느냐고 묻자, “한 회만 더 싸우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에디슨에게 도대체 발명에 성공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만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하죠.”라고 대답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이루어 내는 사람들은 낙관론자만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의 끝처럼 보이는 십자가 뒤에 부활이 있음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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