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평상심(平常心) - 11.2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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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11-24 | 조회수429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2011.11.24 목요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1785-1839)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다니6,12-28 루카21,20-28
평상심(平常心)
살아갈수록 하나 둘 떠나고 점차 나는 잊혀 져 가기 마련입니다. 마치 죽음과도 같은 떠남과 잊혀 져 감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잃지 않고 평상심을 지니고 사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오늘은 평상심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라는 조주 선사의 물음에 남천 선사의 간명한 답입니다. “평상심이 도이다.” 늘 평온한 마음으로 지냄이 바로 도라는,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수도승 수행이 목표로 하는 ‘마음의 순결’과도 통하고 동방수도승들의 ‘아파테이아-마음의 평정(平靜)’- 와도 통합니다.
309일 간 35m 크레인 비좁은 철판 공간에서 사계절을 지낸 김 진숙 씨의 인터뷰기사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309일을 어떻게 견뎠습니까?- “그냥 여기도 삶이 유지되는 공간인데… ‘특별히 이걸 참아야 한다.’ 이런 생각은 없었어요.” 바로 이런 자세가 평상심입니다. 이런 평상심을 지녔기에 309일 동안 고공 크레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크레인 위에서 가장 힘든 것은 뭐였지요? - “평상심을 유지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어요.” 구도자적인 답변입니다. 늘 평온한 마음의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보다 힘들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조합원들이 밑에 있었어요. …트위터를 하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을 보고 힘이 많이 났어요. 그래도 안개 낀 날은 무서웠어요.” -안개가 왜요? - “날이 맑으면 멀리까지 보이니까 사람들을 보면서 힘을 얻거든요. 그런데 안개가 끼면 앞도 안보이고, 멀미하고 토하는 것은 곧 적응이 되었는데, 허공이 혼자 떠있는, 아우 정말 안개는 무서웠어요.” 고립단절의 상황에서는 평상심도 없고 그 자체가 죽음이요 지옥입니다.
다정한 사람들 간의 보이지 않는 연대와 소통 덕분이었다는, 너무나 평범하고 자명한 진리를 깨닫습니다.
오늘 1독서의 다니엘과 복음의 예수님 역시 평상심의 대가들입니다. 바빌론 적국에서 다니엘이 이렇게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위로 하느님과의 원활한 소통에 옆으로 다리우스 임금과의 원활할 소통이 자리 잡고 있음을 봅니다. 평상심을 지닐 때 두려움과 불안은 사라지고 깊은 안정(安靜)과 평화가 그 안에 자리 잡습니다.
다리우스 왕이 신망을 한 몸에 받은 다니엘이었습니다. 적수들의 함정에 빠져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평상심을 지닌 하느님의 종 다니엘을 해칠 수는 없었습니다. “임금님, 만수무강하시기를 빕니다. 저의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으므로, 사자들이 저를 해치지 못하였습니다.”
사나운 짐승들과 평화를 누렸다는 성인들의 일화에서처럼 평상심을 지닌 무아의 사람 다니엘 역시 사자들과 평화를 누리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저런 표징들과 온갖 어지럽고 혼란한 사건들 속에서도 공포에 휩싸여 까무러치지 말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하느님의 구원을 바라보라 하십니다. 짙은 구름 넘어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듯 말입니다. 늘 하느님의 구원을 바라볼 때 평상심의 선물이요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내일 세상이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자세 역시 평상심의 표현이자 믿음의 자세입니다. 그러니 평상심을 지닌 삶 자체가 이웃에겐 최고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이웃에 전달되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당신의 영원한 도반임을 일깨워 주시며 평상심을 선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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