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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커밍아웃/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25 조회수590 추천수14 반대(0) 신고



어느 날 박쥐는 새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너, 새야? 아니면 쥐야?”
“몰라, 난 그냥 박쥐야. 그냥 박쥐하면서 너희들하고 친구로 지내면 안돼?”
“안돼! 너 새하고 싶으면 항상 우아하게 하늘만 날아다녀. 한 번만 더 땅에서 쥐하고 놀면 넌 영원히 새 축에는 못 끼일 테니까 알아서해!”

박쥐가 다시 쥐들에게 물었다.

“나 그냥 박쥐하면서 너희들하고 친구로 지내면 안 될까?”
“그럼 되고말고. 하지만 가끔씩 하늘을 날면서 느끼는 것들도 우리에게 들려줘야 해. 알겠지?”

박쥐가 새들에게 말했다.

“나, 쥐 할래.”

나는 주위에서 아주 ‘열심한 신자’분들을 많이 만난다. 그분들은 영적으로는 철저하게 기도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실천적인 차원에서도 애덕의 실천과 복음 전파에 앞장서는 등 사제인 내가 보기에도 본받아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소위 ‘날라리 신자’라고 일컬어지는 부류의 신앙인들도 많다. 내가 교회법을 전공하는 사제인데도 불구하고 워낙 법과 교리에 꽉 매인 듯한 신앙생활을 답답해하는 때문에서인지 무엇인가 항상 따지고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단순하고 경쾌하고 편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신자 분들이 많이 모이는 편이다.

그 동안 나는 ‘열심한 신자’분들을 만날 때는 ‘열심한 사제’인 것처럼, ‘날라리 신자’분들을 만날 때는 ‘날라리 사제’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해왔다. 이 두 부류의 신자군은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영원히 양립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두 가지 역할을 번갈아 하면서도 어떤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기보다는 그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오히려 내 사제로서의 현재 모습을 직시할 수 있었다.

세상사의 거의 대부분은 상위 20%의 그룹이 이끌어가고 있다는 ‘파레토’의 ‘20:80 이론’을 교회 안에 적용했을 때 20%의 아주 열심한 신자 분들이 교회를 실제적으로 이끌어나간다는 것이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20%는 다시 나머지 80%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간혹 열심히 활동하면서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분들 중에서 어떤 분들은 그 신앙적 열성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그들 신앙의 가장 본질적인 가르침이자 복음전파의 핵심이 사랑과 평화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격적인 모습으로 동료 교우들을 부당하게 폄하하고 이웃들에게 깊은 상처까지 주는 경우를 종종 대하게 된다.

유럽 제국주의의 공격적이고 오만한 선교방식을 그 분들을 통해 다시 보는 것 같은 참담함에 조그만 더 부드러워질 것을 부탁드리면 바로 ‘세상과 타협한 사제’라는 비난과 함께 자신들의 판단과 방식대로 이 ‘문제 있는 사제’를 바로 잡기 위해 그야 말로 혼신의 노력을 다 기울인다. 그들은 하느님과 교회를 위하여 그들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상대방이 얼마나 상처받고 괴로워하는지를 헤아리는 일 따위는 전혀 관심 밖인 듯 하다.

나는 그 분들의 ‘성전聖戰’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는 그렇게 공격적인 선교사로 살아갈 힘도, 모든 법과 교리를 철저히 지키며 실수 한 번도 용납하지 않는 숨 막히는 얀센의 세상 속으로 다시 돌아가 평생을 살아갈 자신도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날라리 신자’들이 그립다. 그들이 덜 복음적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공격적인 열심한 신자들보다는 덜 공격적인 모습의 ‘해피 날라리 신자’들이 내게는 더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느껴진다.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사는 것이 편하겠다. 결국 내가 ‘날라리’라서 그런 것 일게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고린13,2)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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