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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4주간 - 심는대로 거둔다![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26 조회수323 추천수2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성지에 오면 모든 것이 변화됩니다.

하다못해 날아다니는 먼지도 성지에 오면 거룩한 먼지가 되고,

날아다니는 새도 성지 안에 들어오면 거룩한 새로 바뀌고,

여기 저기 골짜기를 떠다니는 바람도 성지 안에 들어오면 거룩한 바람이 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도 성지 안에 오면 무한한 은총의 비가 됩니다.

 

죗덩어리 인간도 성지에 오면 들어올 때 얼굴과 나갈 때 얼굴이 달라집니다.

오늘 은총의 밤을 위하여 이 야외제대도 깨끗이 청소하고, 의자도 깨끗이 준비했어요.

 

지난 6월 15일 최양업신부님 성전 150주년 되는 날에

3000명이 넘는 교우들이 산상제대에 모였습니다.

그때 교구 신부님들, 80명이 넘는 분이 오셨던 것 같아요.

그 날 산상제대에서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하시듯이 현양대회를 잘 치렀습니다.

 

가톨릭 평화신문에서 현양대회 행사를 보도했는데 저에게 전화가 자꾸 옵니다.

“신부님, 배티 현양대회 갔더니 장봉훈 주교님은 최양업신부님이 배티에서 돌아가셨다고 하고,

가톨릭신문에 보았더니 문경새재에서 돌아가셨다고 하고~ 어디가 맞는 겁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직 학자들 의견이 분분합니다.

우리 주교님이 ‘배티’ 이길 바라시는 거지요.

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배티는 아닐지 몰라도

‘진천 쪽의 작은 공소에서 돌아가셨을 것이다.....’ 라는 학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그럼 하느님을 정말 기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성서에서는 크게 한 테마로 영적예배를 성실하게 드리는 겁니다.

 

구약과 신약에 흐르고 있는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성실한 영적예배는

첫 번째, 반드시 산 제물을 바쳐야 한다.

 

구약의 제사장은 죽은 비둘기, 죽은 염소 받지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예물이 하느님이 가장 기뻐하는 영적예배의 첫 번째 예물입니다.

 

신약적인 의미로 살아있는 제물은 무엇일까요?

살아있는 미사가 있고, 살아있는 봉헌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미사는 무엇일까요?

어떤 분들은 강론을 그럴듯하게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머릿속은 다른 데를 돌아다녀요.

심장은 살아있지만 뇌가 죽어있는 것을 뇌사라고 하는데

많은 분들이 미사시간에 뇌사상태에 빠져있어요.

다시 말하면 뇌사상태에서 분심 잡념 속에 드리는 미사는

하루에 열대를 드려도 하느님이 안 받는다~ 이겁니다.

 

죽어있는 기도가 있고 살아있는 기도가 있어요.

오늘 내가 드리는 이 묵주기도가 내 생애 마지막 기도처럼

그런 각오로 바친다면 이런 기도는 살아있는 기도입니다.

 

하루 20단을 바치더라도 손가락 자동으로 넘어가는,

의무적이며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묵주기도하면서

성모님을 만나는 그런 특별한 체험이 없다면 이건 죽은 묵주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하루에 100단을 바쳐도 하느님이 안 받아주십니다.

 

죽은 봉사가 있습니다.

살아있는 봉사는 늘 겸손한 봉사입니다.

오른손이 한 것,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살아있는 봉사입니다.

죽은 봉사는 하고난 다음에 유세를 떨고, 티를 내고, 목에다 힘주고

자기가 봉사한 것 누군가 알아주어야 되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만약에 내가 봉사한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혼자서 성질내고 티를 냅니다.

 

기도 없는 봉사는 수명이 짧습니다.

그리고 겸손의 옷을 입을 재간이 없습니다.

 

본당 내에서 많은 신자들에게 직책이 주어지는데 그 직책이

하느님 보시기에 ‘예쁘다~’ 하려면 기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체면 때문에, 자기 자신과의 약속 때문에, 신부님이 시키니까 임기나 채워야겠다!

그런 봉사는 죽은 봉사입니다.

 

살아있는 미사, 살아있는 기도, 살아있는 봉사!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성실한 예배는 죽은 제물을 바치면 안 되고

반드시 살아있는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 이 자리에 오신 것, 내 발로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성모님께서, 오늘 나를 이 자리에 부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기도를 바쳤는지 모릅니다.

 

개중에는 오기 싫은 것, 억지로 끌려오신 분도 있지만

어느 한분 예외 없이 하느님이 선택해서 왔다는 것을 믿으시고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산제물로 이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사제가 마지막 강복을 줄 때까지 영적 졸음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저는 수도 없이 많은 성당을 다닙니다.

살아있는 성당은 성당 문을 열면 느낌이 옵니다.

 

거룩하게 살아가는 성당은 강의가 시작되면

신부님이 맨 앞자리에 앉아서 겸손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수녀님도 총회장님, 사목회 임원들도 모두 나와 앉아 열심히 메모를 하며 듣습니다.

 

어떤 본당에 가면 할머니 몇십 명 앞에 앉아있고

나 초대한 신부님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실하고 올바른 영적예배를 드리는 두 번째 조건은

바치는 제물에 흠집이 나 있으면 안 됩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제물을 받기 전에 상세하게 검사합니다.

비둘기 발톱이 부러져 있으면 퇴짜!

염소 뿔에 금이 가 있으면 퇴짜!

 

구약의 제물은 살아있는 짐승의 흉터를 가지고 기준을 삼았지만

신약의 제물의 흠집은 두 가지의 뜻이 있지요.

첫 번째는 죄의식입니다.

우리들이 죄를 지으면 죄의식이라고 하는 흠집이 생깁니다.

사제들은 고백소에서 기다립니다.

‘너의 영혼에 있는 흠집을 깨끗이 없애고 제단 앞에 나가거라.’

 

두 번째 영적예배는 잘못된 봉헌, 겸손이 들어가 있지 않은 봉헌입니다.

봉헌에는 육신의 봉헌도 있고, 물질의 봉헌도 있습니다.

성서 말씀에 ‘심는 대로 거둔다’ 고 했습니다.

쪼가리를 드리면 쪼가리를 받습니다.

 

제가 전에 있던 본당에 할머니 한 분은 토요일 오후가 되면

당신이 가지고 있는 돈 중에 가장 깨끗한 돈을 고릅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들여서 깨끗하게 다림질을 합니다.

“그 돈을 어디에다 쓰십니까?”

“내일 헌금으로 낼 돈입니다.”

액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 할머니는 돈을 다리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동안 구겨졌던 영혼을 편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주일헌금을 할 때 내려다보고 계신 예수님께서

‘저 과부는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쳤구나!’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거드름을 피면서 내는 돈 거들떠보시지도 않았고

자기의 양식을 살 돈을 내었던 과부의 돈을 보시고

자비하신 하느님이 그 과부를 굶게 내버려두셨을까요?

생각지도 않은 많은 축복을 주셨을 겁니다.

 

흠집이 없다고 하는 그 뜻은 죄를 지으면 우리 영혼에 흠집이 생기는데

반드시 성사를 통해 흠집을 제거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뜻은 준비된 봉헌!

준비된 봉헌은 주님께서 칭찬하셨던 가난한 과부의 봉헌을 뜻합니다,

 

세 번째로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올바른 영적제물의 조건은 제물을 들고

직접 제단 앞에까지 나와야 합니다.

 

미사는 사제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은 사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함께 이 미사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세례 때,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지위에 오르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본인 자신이 직접제물을 들고 나와라!

 

예를 들어서 냉담 하는 남편이 양심은 있어서

“헌금 통에 나대신 넣어주라!‘

돈을 줘서 부인이 꼬박꼬박 헌금을 했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런 돈 안 받습니다.

 

아버지 생신인데 아들이 아버지한테 가기 싫어서 아내에게

‘너 가서 아버지 생신 차려드리고, 나는 해외출장 갔다고 해라!’

아버지 생신날 아들은 골프 치러 갔습니다.

이런 자식을 후레자식이라고 합니다.

 

신앙적으로도 후레자식 많습니다.

주일날 하느님아버지 찾아보는 게 우선이 아니라

취미생활하고, 비즈니스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본인이 직접 제단에 나와야 합니다.

 

제가 어느 본당에 있을 때, 가정방문을 예정보다 한 시간 미리 갔더니

남편이 미처 나가지 못가고 집에 있었어요.

“당신 십여년 냉담했다고 하니, 오늘 나하고 편안하게 면담성사 합시다.”

“신부님, 제가 쉰둘인데 아직 8년은 일 더해야 합니다. 하느님 절대 배반하지 않을 테니까

8년만 기다려 주시면 그 때 신부님 찾아가서 총고백할 테니까 오늘은 강요하지 마십시오.“

결국 고백성사 못 보았어요.

 

그러고 4일이 지났는데 심장마비로 그가 갑자기 죽었어요.

가족들이 관을 제단 앞으로 끌고 나왔는데 저는 속으로

‘3일 전에 성사 봤으면 너 죽을 때 하느님 무섭지 않았을 것 아니냐~

4일도 못 살면서 8년 후에 보자고?’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미루라고 그럽니다.

오늘 성사 못 보면 내일 봐라!

오늘 화해 못하면 내일 하면 되잖아!

내일이 와야지~ 한 밤중에 심장이 멈추면 가는 거예요.

 

저도 하도 몸을 돌보지 않아서 미국가기 전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검사하려고 매일 병원에 가요.

병원에 갔더니 ‘신부님, 저 암이래요!’

모르는 사람도 나 붙들고 울고 ~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짧아요~ 별게 아니잖아요?

주님이 불러주실 때까지 잘 써야지요.

 

사제생활 30년 뒤돌아볼 때,저는 제 몸을 돌보지 않았어요.

‘나는 오래도 살고 싶지 않아, 죽을 때까지만 살자! 내 이거는 꼭 지켜!’

 

다만 죽을 때까지 살더라도 확실하게 뜨겁게 살자!

어영부영 차지도 덥지도 않게 살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살자!

내 속으로 난 자식은 없어도 내 말을 듣고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다 내 영적자식들이 아니냐!

이렇게 위로를 받고 살고 있어요.

 

구약과 신약에 흐르고 있는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영적 예배 세 가지는

첫 번째, 살아있는 제물을 바치자.

두 번째, 흠집이 없는 제물을 바치자.

세 번째, 어떤 일이 있어도 숨이 붙어 있는 한 주님 앞에 제단 앞에 나아가자.

 

비록 관절 때문에 절뚝거리더라도 내 두 발로 하느님 앞에 나온 것, 감사해야지요.

이 배티성지에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지만

내 발로 올 수 있었던 것, 얼마나 감사합니까?

 

오늘 부르셨으니까 치유의 은혜 주실 거예요.

구마의 은혜 내리실거예요.

믿음의 갑옷 입혀주시고, 성령의 칼을 잡게 하실 겁니다.

 

이 자리에 없는 가족들까지도 주님께서는

하나하나 챙기시는 자비하신 분이시니까

오늘 특별히 성체 영할 때 꼭 기억할 가족들 기억하시고 봉헌하세요.

 

오늘 이 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밤이 되고

살아있는 배티 은총의 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성체 영하도록 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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