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가야, 코막힘(코감기) 내게 다오 [사랑의 대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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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11-11-26 | 조회수39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앞서 사랑의 탄생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인간에게 사랑(아버지의 사랑)이 탄생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으로써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다 하였습니다. 저는 '내어 준다'는 말을 자주 많이 해 왔습니다. 자기 버림, 자기 포기, 자기 비움 모두 '내어 주는' 것이다는 의미를 부여해 왔습니다. 자기 버림이거나 자기 포기이거나 자기 비움은 한결같이 전부 자신을 '내어 주는' 것들입니다. '무소유'는 없다는 것보다 내어준다는 것을 뜻하는게 더 타당합니다. 자기를 비우거나 버리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비우고자 하는 자아에 있고 자신을 포기하고자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포기하려는 자아에 묶여있기 마련입니다. 자아가 없는 자기 자신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소유'도 무소유의 자아적인 하나의 엄밀한 욕구에 불과합니다. 자아는 없을 수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 도를 터득하기 위한 외로운 고행의 득도는 오직 자신을 위한 것뿐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그와같은 인간 자신을 위한 사랑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 버림, 자기 포기, 자기 비움은 상대를 향한 인간의 사랑에서 나온다 할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 자신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거나 자신을 버리거나 자신을 비우는 '사랑의 도'가 아니다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을(자아를) 없애는게 아닌, 하느님 자신을 내어주시는 것입니다. 내어주심으로써 '완전한 무소유'를 이루신다 할 것입니다. 자아에 묶여가는 사랑이 아니라 자아를 내어주는(양도하는) 완전한 사랑인 것입니다. '내어준다'는 것은 버림, 포기, 비움과 같은 도를 닦아야 하는 득도의 과정과 다릅니다.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은 득도의 수련방식이 아니며 '내어주실 수 있는 권능'을 지니신 하느님께만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어주는' 힘은 하느님의 은총에 가깝다고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과 일치하고자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느님 은총인 사랑의 힘이 주어진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서의 기도는 삶과 결합된 기도를 말합니다. 예수님과 일치의 삶을 살고자 하는 영혼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을 양도해 주십니다 사랑을 양도받은 사람은 '사랑의 수취인'입니다. 사랑의 중개자라고도 말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이 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달받았다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기 전달은 이와같은 사랑 안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집니다.자기를 비워 자신이 없다는 '거짓된 자아'가 아니다 하겠습니다. '내어주는' 것은 가장 완전한 비움, 완전한 가난이 되는 것입니다. 가난은 가진게 없다는 것이 아니고 가진 것을 내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완전한 가난은 완전하게 내어주는 가난을 말하며 성경에 나오는 '완전한 사랑' 역시 '아버지의 사랑' 곧 예수님의 사랑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완전하게 내어주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 비움, 그것은 자기의 내어줌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은총으로 완전한 사랑을 이룬다는 뜻이 됩니다. 대림시기가 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각자의 마음 안에서 탄생이 되도록 의미있게 보내고자 노력해 봅니다. 사랑의 탄생이 자신 안에 오도록 뜻깊은 묵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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