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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27 조회수716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11월 27일 대림 제1주일




Be watchful! Be alert!!
You do not know when the time will come.
(Mk.13.33)

 

제1독서 이사야 63,16ㄹ-17.19ㄷ; 64,2ㄴ-7
제2독서 1코린 1,3-9
복음 마르코 13,33-37


한 미국인이 충청도 지방을 여행을 하다가 이발소를 찾았습니다. 이발사는 자신의 가게를 찾은 외국인을 보고는 깜짝 놀랐지요. 더군다나 이 미국인은 한국말을 전혀 하지 않고 영어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영어를 못하는 이 이발사는 당황했고 어찌할 바를 몰랐지요. 그래서 망설이다 충청도 사투리로 말했습니다.


“왔시유?”

그런데 미국인은 서투른 영어로 “What See You?”하는 줄 안 것입니다. 즉, 무엇이 보이냐고 묻는 줄 알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의 앞에 있는 거울을 보고서는 “Mirror”(거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이발사는 그냥 밀라는 줄 알고 그의 머리를 박박 밀어 버렸다고 합니다.

서로 소통이 되지 않으면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과 우리는 얼마나 소통이 되고 있습니까? 당신 뜻에 맞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사랑을 보여주시는 주님에 대해 우리들의 응답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세상의 관점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함으로 인해,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소통, 즉 서로 통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먼저 당신 자신을 낮추셨지요. 즉, 2천 년 전에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의 몸을 취해서 이 땅에 강생하셨습니다. 그냥 전지전능하신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우리와 완벽하게 소통하시기 위해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것도 가장 힘없고 연약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먼저 당신 자신을 낮춘 주님에 비해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주님과 통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이제는 우리 역시 스스로를 낮춰서 사랑을 실천해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이발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머리숱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발을 오랫동안 하지 않으면 무척이나 지저분하게 보이지요. 거울을 통해 문득 본 제 모습이 너무 지저분해 보여서 이발을 했던 것입니다. 이발사는 이발을 마치고 저에게 이러한 말을 하더군요.

“머리숱이 정말로 많네요. 이제 이발을 했으니 머리가 가볍지 않습니까? 이렇게 무거운 머리카락을 들고 다녔으니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정말로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렇게 많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다녔어도, ‘머리가 무거워서 도저히 못살겠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발을 하고 나서야 그동안 얼마나 무거운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는지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죄 역시 평상시에는 그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 지 알 수 없습니다. 깊은 성찰과 반성 그리고 고해성사를 통한 죄고백과 용서로 비로소 그 동안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깨닫고, 영적으로 가벼워진 내 자신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림시기입니다. ‘깨어 있어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깨끗한 내 자신을 만들어야 하며, 동시에 주님과 소통하기 위해 나를 낮추는 작업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마주 닿는 가슴이다.(천양희)




나의 똥파리

힘든 자전거. 그러나 건강해집니다.

사자는 일단 먹이를 먹으면 위를 가득 채운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소화가 될 때까지 1주일이고 2주일이고 잠만 자지요. 그런데 이렇게 꼼짝도 않고 있으면 건강할까요?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계속 먹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소화불량에 걸리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사자 역시 이렇게 꼼짝 하지 않고 있으면 소화불량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자는 이렇게 하고 있는데도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별한 위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동물학자들은 사자가 특별한 위장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근본적인 이유를 찾게 되었지요. 바로 ‘똥파리’라고 합니다. 이 똥파리는 사자의 몸 구석구석에 달라붙어서 피를 빨아 먹습니다. 따라서 사자는 자다가도 피를 빨아 먹는 똥파리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지요. 이렇게 움직이다보니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 것이랍니다.

사자의 입장에서 똥파리는 어떤 존재일까요? 잠도 못 자게 하는 귀찮은 존재, 또한 아픔도 가져다주는 제발 사라졌으면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생명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지요.

고통과 시련이 제발 내 곁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순간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고통과 시련이 내 생명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 나의 똥파리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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