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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27일 야곱의 우물- 마르 13,33-37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27 조회수368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35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37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믿는 이들의 마음에 오시어 우리의 구세주를 깨어 기다리게 하소서.

세밀한 독서(Lectio)
교회의 전례력은 ‘대림’이라는 기다림으로 새해를 시작합니다. 대림시기는 구원역사의 틀 안에서 우리 구세주로 오신 아기 예수님과 종말의 심판자로 오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에 대한 기다림을 내포합니다. 왠지 성탄과 재림은 별개의 다른 사건일 것 같은데 하나로 묶여 있는 까닭은, 지상의 순례자인 하느님의 백성이 오늘에 서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지향하며,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을 우리의 삶 안에서 구현해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던 초대교회에 마르코는 13장을 통해 종말의 전조(1­23절)와 본격적인 종말 사건을 서술(24­27절)하는 한편, 임박한 종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28­31절) 그러나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니 깨어 있어라.’(32­37절)는 말씀으로 13장을 마무리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미래 지향적인 희망과 함께 우리를 두 개의 시간으로 초대합니다. 하나는 ‘그날과 그 시간’이며 다른 하나는 ‘깨어 있어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우리가 주님을 맞이해야 하는 날로 개인적으로는 생의 마지막 날이요 인류한테는 세상의 종말이 됩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을 구원자인 동시에 심판자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은 무엇을 더하여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는, 생의 셈을 바치는 시간이기에 누구나 마지막 날이 목전에 다가서면 고통과 두려움으로 떨게 됩니다.(마태 25,18.32 참조) 또한 이날은 특정인만 아니라 생명을 지닌 모든 이에게 예외 없이 다가오는 피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마르 13,32)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던”(마태 24,38)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영원히 오지 않을 시간처럼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 전념하며 일상에 잠들어, 오시는 주님을 구원자로 기쁘게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루카 14,15­21 참조)


그러니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라고 예수님께서는 네번에 거쳐 거듭 촉구하고 계십니다.(마르 13,33.34ㄷ.35.37) 이는 제자들(3절)만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씀”(37절)으로서 ‘그날과 그 시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음’은 단순히 육신의 고단함에 빠져 잠들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지혜 6,15; 시편 127,1­2 참조) 세상의 거짓 평화에 안주한 어둠의 삶이 아니라 청명한 정신으로 바른 삶의 자세를 주도해 가는 빛의 세계에 머무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빛의 열매를 맺으며(에페 5, 7­9 참조) 주인이 “깨어 있으라고 분부”(마르 13,34ㄷ)하신 대로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루카 12,36) 기다림의 자세를 지닙니다. 그는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그분이 누구인지 그 기다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기에 유혹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기도합니다.(마태 26,41ㄱ; 콜로 4,2; 에페 6,10­20 참조) 또한 주인이 먼 길을 떠나 있다 해도 ‘맡겨진 권한과 소임’에 충실한 오늘을 살아갑니다.(마르 13,34ㄴ; 마태 24,45­51 참조) 지난 일에 매여 오늘을 놓치지 않으며 허황된 미래에 오늘을 걸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불평하거나 게으르지 않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기뻐합니다.(마태 25,14­30 참조)
그리하여 빛의 자녀는 “맑은 정신으로 믿음과 사랑의 갑옷을 입고 구원의 희망을 투구로 씁니다.”(1테살 5,8) 그리고 신랑이 언제 어느 때 오신다 해도 맞이할 수 있도록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여 사랑의 불꽃을 밝히는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그분을 만나뵈올 준비를 하는 사람입니다.(마르 13,36­37; 마태 25,1­13 참조)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주셨습니다.”라고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주님과의 친교에로 초대된 우리는 주님을 만나뵈올 ‘그날과 그 시간을 깨어 기다리며’ 더없는 설렘으로 그분께 드릴 사랑의 나날을 채워가야 할 것입니다.(마태 2,10; 에페 5,14; 이사 60,1­3 참조)

묵상(Meditatio)
우리를 잠들게 하는 것은 육신의 고단함이 아니라 세상이 주는 거짓 평화에 휘둘림입니다. ‘깨어 있으라.’라고 외치는 말씀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것은 오늘 쌓아 올린 수고가 나의 노후를 책임지고, 너를 밀치고 일어선 권세와 명예가 나를 품위 있게 하며, 너와 맺어온 관계가 나의 영역을 보장하리라는 어설픈 믿음 속에서 눈을 뜬 채 잠든 까닭입니다. 잠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깨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잠들지 않았다 하니 누가 나를 흔들어 깨워 참된 평화로 오실 그분을 맞이할 예물을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마태 2,11 참조)

기도(Oratio)
보라, 내가 도둑처럼 간다. 깨어 있으면서 제 옷을 갖추어 놓아, 알몸으로 돌아다니며 부끄러운 곳을 보일 필요가 없는 사람은 행복하다.(묵시 16,15)

 

반명순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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