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순례를 오셨던 한 수녀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국 음식 몇 가지를 주셨는데 그 속에 누룽지와 갈치속젓이 있었다. 고향이 군산이라서 모든 해산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쩐지 갈치속젓은 냄새도 그렇고 색깔도 그렇고 해서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학교를 가지 않는 금요일 늦은 오후, 물을 끓여 누룽지에 붓고 불린 뒤 송송 썰린 풋고추가 들어가 있는 갈치속젓을 반찬으로 한 입 먹었더니 풋고추의 얼얼한 매운 맛과 젓갈의 짭짤한 맛이 조화를 이루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어째 이 맛을 일찍이 알지 못했던고...... 후회와 감동이 뒤섞여 밀려오는 새로운 맛의 발견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치즈 중에 ‘고르곤졸라’라는 시푸런 곰팡이가 점점이 박혀있고 발효된 냄새가 코를 찌르는 치즈가 있다. 지금이야 많이 익숙해져서 피자를 먹을 때마다 이 고르곤졸라 피자를 즐겨먹는다 해도 역시 나에게는 가끔씩 먹는 별미 음식일 뿐이다.
만약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갈치속젓을, 한국 사람들에게는 고르곤졸라 피자를 매일 먹고 살라고 하면 어떨까? 아마 못살겠지? 상상만 해도 그들이 찌뿌리는 인상이 떠올라 재밌어진다. 그렇다. 이탈리아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은 각기 처한 삶의 환경에 따라 구하기 쉬운 식재료들을 바탕으로 음식문화를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입맛이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또한 다르다.
이 입맛에 따라 먹는 음식이 체질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하고 또 ‘신토불이’라 하여 입맛이 당기는 자기 땅의 신선한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이 입맛이라는 것은 억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각 민족과 문화마다 고유한 입맛이 있듯이 매일 매일 우리들의 양식이 되어오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우리들 영혼에도 입맛(심성)이라는 것이 있다. 갈치속젓을 맛있게 먹는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착 달라붙는 하느님이 있고 고르곤졸라 치즈를 맛있게 먹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편하게 일용할 수 있는 하느님이 있다.
범위를 좀 좁혀보면 같은 한국 사람들 중에도 모두 획일적인 입맛을 지닌 것이 아니라 개인차가 있는 것과 같이 하느님을 편하게 받아먹을 수 있는 종교적 심성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이렇게 자신의 심성에 따라 내 몸과 하나된 것 같이 편안하게 오시는 하느님을 체험하고 영접하는 것이 깊이 있는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본 전제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떠먹여주는 유아식이 자기에게 더 이상 맞지 않는데도 언제까지 투정만 부리는 어린아이로 있을 수는 없다. 성인이 되면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음식을 스스로 찾고 스스로 떠먹어야 한다.
누군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해 진 교리 속에 갇힌 하느님을 ‘나의 하느님’이라고 무조건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하느님은 누가 가르쳐줘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직접 그 분을 찾아 나서는 생생한 역동과 함께 비로소 체험하고 깨달을 수 있는 분이시다.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계시는 ‘나의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일이 바로 신앙의 참다운 시작이다. 그래서 신앙은 교회도, 사제도 대신할 수 없는 당신만의 고유하고도 창조적인 개성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신앙에 감동이 없다면 애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
“당신은 나의 주님, 당신만이 나의 행복이십니다.”(시편16,2)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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