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교시 수업이 끝나자 언제 지루해 했었냐는 듯이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강의실을 나서는데 ‘로따 로마나’(Rota Romana, 로마공소법원)에서 재판관으로 근무하시면서 혼인법을 강의하시는 까베를레띠 신부님이 나를 불러 세우셨다. 그리고는 ‘이 곳에서 공부하며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려운 점은 없느냐, 강의가 어렵지는 않느냐, 아픈 데는 없느냐...’ 등등 세세한 면까지 자상하게 물으시고는 사순 시기에 읽으면 아주 좋은 책이라고 하시면서 내게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셨다.
평상시 강의하시는 스타일만 봐도 그 분이 얼마나 친절한 분이신지 금방 알 수는 있었지만 멀리 한국에서 와서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하시면서 영성적인 면까지 챙겨주시는 모습을 접하고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신부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은혜는 무슨...... 나중에 우리 최신부가 선교지에 가서 또 그 곳 사람들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고 살 텐데 뭘...... 안 그래? 하하하”
한 때 철없이 날뛰던 시절에는 내가 잘 나서 내 힘으로 이 세상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 또 지금껏 내게 은혜를 베푼 사람들 하나하나를 일일이 기억하고 찾아다니며 보답할 수도 없다는 사실, 그리고 부모님의 은혜와 같이 너무도 커서 죽을 때까지 갚아도 결코 다 갚지 못할 은혜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 주위 이웃들의 도움과 은혜를 입어야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장담컨대 세상 어디에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만 살아가는 이는 없다. 스스로가 인지를 하든지 혹은 못하든지, 아는 사람에게서든지 혹은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서든지 사람은 누군가로부터의 도움이 없이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 또한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도움을 주고 은혜를 베풀면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이 이처럼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고, 은혜를 베풀고 갚는 사람들끼리의 상호관계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강 건너 불 보듯 뻔한 이치 하나가 바로 베푸는 사람이 많으면 한층 여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고 반대로 받은 것을 움켜쥔 채로 계속해서 받기만 하려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각박하고 모진 세상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가난했던 옛날보다 물질적으로는 훨씬 풍요로워졌다는 요즘 세상이 훨씬 각박하고 모질어졌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먼저 은혜를 베푸는 사람도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사람도 적어졌다는 말일게다. 세상에 봉사하겠다는 그 어떤 거창한 생각보다 먼저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은인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면서 더 늦기 전에 보은報恩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람 된 도리부터 하는 것이 어떨까?
나는 오늘 까베를레띠 신부님으로부터 또 한 번의 은혜를 입었다. 그 신부님은 내가 당신께 직접 무엇을 되갚기 보다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베풀 은혜를 말씀하셨다. 하느님과 사랑스런 내 이웃들로부터 받은 이 모든 은혜를 내가 만나게 되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열심히 은혜 갚음 하면서 나머지 삶을 채우고 싶다.
고마운 사람들......
“온갖 훌륭한 은혜와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늘의 빛들을 만드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1야고,17)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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