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1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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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현 | 작성일2011-11-28 | 조회수373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11년 11월 28일 대림 제1주간 월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5-11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감탄시킨 백인대장의 한 마디는 지금도 영성체를 할 때 모든 신자들이 고백하는 최고의 신앙고백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 그리고 자신의 종을 아끼는 마음, 이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백인대장의 행동은 백인대장의 한마디가 나타내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백인대장의 간절함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종이 아프다는 사실 하나에 주인이 그 종을 살리려 한 것입니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가 성립하는 계급사회에서 종은 주인의 소유물입니다. 그 소유물의 주인은 그 물건의 귀중함에 따라 취하는 행동은 다르지만 복음 속의 백인대장에게 종은 그냥 소유물로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종을 낳게 하기 위해 백인대장은 주님을 모시러 다른 종을 보내지 않고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종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인듯 힘겨워하며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은 이 주인의 정성에 그 종을 직접 낳게 해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늘 하셨던대로 그의 집을 찾아가실 요량입니다. 예수님의 발걸음을 움직였으니 얼마나 그 진심이 컸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 종을 보실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주인이 주님께서 움직이실 필요가 없다고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주인이 주님을 찾아온 또 하나의 이유가 드러난 셈입니다. 주인은 주님을 모셔오기 위해 정성을 다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자신이 모시기에 합당하지 않음을 알고 온 것입니다. 그저 그분이 원하시면 될 것이라는 믿음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겸손한 자세가 그의 이런 행동을 가져온 것입니다. 주님을 감탄시키는 백인대장은 그의 입에서 나온 멋진 말이 아니라 그의 모든 행동에서 묻어나는 진심으로 하느님 앞에 선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주님 앞에서 노예보다 못하다 고백하면서도 정작 그의 노예를 위해 발품을 팔고 아픈 마음을 드러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는 단어 외에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오직 종을 살리겠다는 마음, 그러나 나는 자격이 없다는 자신에 대한 솔직함이 백인대장의 모습이었던 셈입니다. 그의 이런 행동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누구나 예상하는 결론은 그 종의 치유이지만 예수님은 그 이상의 것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하느님이 보고 싶어하신 사람의 모습이 드러난 순간, 구원의 문은 이스라엘 바깥에 열려 버립니다. 당신의 사랑을 알려주시고 가르쳐 주신 이스라엘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믿음을 주님은 이방인이며 심지어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이에게서 발견하신 것입니다. 그에게 아파하는 종을 위해 자신의 자존심과 지위를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 세상의 질서를 넘어서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의 답을 우리에게 내어 놓은 셈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고 모시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이의 고백은 하느님 앞에서의 우리의 자세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 청하는 것은 그 하느님의 능력 이전에 사랑을 알고 있음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 고백을 우리 안에 오시는 주님을 모실 때,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면서도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고백 뒤로 주님의 성체를 영하며 불가능한 일들을 늘 경험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고백의 시작인 백인대장의 모습을 기억하며 우리의 이 고백이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세상을 위해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 아니 이름은 알지만 자격이 없다 불리는 이. 그가 백인대장입니다. 그로 인해 열린 구원의 폭 안에 우리도 서 있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듯 싶습니다. 특별히 하느님의 마음이 움직이는 기도를 말하고 가르치려는 이들에게 좋은 교과서일 듯 싶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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