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삶은 무엇인가? - 11.2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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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11-28 | 조회수447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11.11.27 대림 제1주일 이사63,16ㄹ-17.19ㄷ;64,2ㄴ-7 1코린1,3-9 마르13,33-37
삶은 무엇인가?
끝은 시작입니다. 오늘부터 교회전례력으로 새해 대림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기쁨에 마음이 설레고 새로운 힘이 샘솟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이 거룩한 시간과 공간이 바로 이 거룩한 대림시기 및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삶을 잘 알아야 오시는 주님을 잘 영접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삶은 갈망입니다. 그러니 갈망하십시오. 구도자의 우선적 자질이 갈망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열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목말라한다는 것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사랑을, 평화를, 정의를, 자유를, 생명을, 빛을,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갈망하여 수도자이고 믿는 자들입니다.
하느님, 생명을 주시는 나의 하느님, 당신이 그리워 목이 탑니다. 언제나 임계신데 이르러 당신의 얼굴을 뵈오리이까?”(시편42,1-2) 오매불망 이렇게 타는 목마름으로 하느님을 찾은 성인들이었습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목마르다.”(요한19,28) 평생 타는 목마름으로 하느님을 찾았던 예수님이셨습니다.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란 시가 생각납니다. ‘민주주의’란 말을 ‘하느님’으로 바꿔도 우리 믿는 이들에겐 그대로 통합니다.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하느님이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하느님이여 ……… 깊이깊이 새겨지는 내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하느님 만세-
그대로 절규의 기도 시입니다. 이렇게 타는 목마름으로 하느님을 찾는 자가 진정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갈망은 그대로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입니다. 인류가 찾아낸 하느님 최고의 선물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삶은 깨어남입니다. 그러니 깨어나십시오.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가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온몸을 무장하십시오.
깨어 일어날 때 비로소 살아있다 할 수 있습니다. 깨어날 때 눈이 열려 깨달음입니다.
거짓에서 진리로, 야만에서 문명으로, 바로 하느님을 향한 활짝 열림이 바로 깨어남이요 깨달음입니다. 막연한 깨어있음이 아니라 하느님 그분을 기다리는 깨어있음입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주님이 언제 돌아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집주인’을 ‘주님’으로 바꿀 때 박진감 있게 다가옵니다.
깨어있을 때 기쁨이여 평화입니다. 마음의 순결이요 겸손입니다. 찬미와 감사입니다.
잠들어 눈 뜬 장님으로 사는 자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어디선가 읽은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야만에서 깨어난 자들의 문명화된 시민의 조직화된 힘’이란 글귀도 생각납니다. 언젠가 써 놓은 ‘당신이 그리울 때’ 란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하느님인 당신을 그리워할 때 활짝 깨어 열리는 기쁨을 노래한 시입니다.
-당신이 그리울 때/당신이 보고 싶을 때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한 눈 가득 들어오는/가슴 가득 안겨오는 푸른 하늘/흰 구름/빛나는 별들 한 눈 가득 들어오는/가슴 가득 안겨오는 그리운 당신/보고 싶은 당신- 1998.11.22
바로 이게 깨어있는 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축복의 선물입니다.
셋째, 삶은 기도입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깨어있을 때 저절로 기도입니다. 하느님과 소통의 대화입니다. 하느님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소통해야 삽니다. 또 이렇게 끊임없이 기도할 때 깨어 살게 됩니다. 늘 깨어, 늘 기도해야 건강한 영육입니다.
살기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름시름 죽어가는 영혼입니다. 하여 영혼 없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죽어 묻힌 자나 영혼이 없는 자나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느님도 모르고 나도 모르니
이 하느님이 빠져버리면 말 그대로 무의미와 허무의 삶입니다.
회개의 기도요, 탄원의 기도요, 고백의 기도입니다. 은총의 대림시기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예나 이제나 하느님과 인간관계는 변함이 없습니다. 서두와 결론은 아버지로서의 하느님 고백이고 중간 부분은 탄원과 회개의 기도입니다. “주님, 당신만이 저희 아버지시고 예로부터 당신 이름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주님, 당신은 저희 아버지십니다.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주님, 당신 종들을 생각하시어, …저희는 죄를 지었고 당신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저희는 나뭇잎처럼 시들어 저희의 죄악이 바람처럼 저희를 휩쓸어 갔습니다. 당신 이름 부르며 경배 드리는 자 없고, 얼마나 간절한 기도인지요.
이렇게 회개의 탄원기도 있을 때 주님은 지체 없이 우리를 도우러 오십니다. 배 밭의 배 나목들이 그대로 하늘 향해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를 기도에 초대합니다. 얼마 전에 쓴 ‘동안거(冬安居)라는 시를 나눕니다.
-하늘과 땅/사이에서 祈禱하는 나무들이다 참 神秘롭다/꿈꾸는 듯하다/말없는 말이 참 깊고 고요하다 열매, 잎들/다 떠나보내고/冬安居에 들어간 배나무들이다-2011.11.23
은총의 대림시기, 동안거에 들어간 배나무들은 우리 기도의 스승들입니다.
넷째, 삶은 일입니다. 그러니 일을 하십시오. 갈망이 씨앗이라면 깨어있음은 푸르른 잎들이고 기도는 꽃이며 열매인 일을 통해 삶은 진정성은 환히 들어납니다. 깨어있음의 이파리 무성하고 기도의 꽃들 화사했어도
우리가 하는 일은 기도뿐 아니라 모두가 하느님의 일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모두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할 때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있으라고 분부한다.” 과연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탤런트는 잘 활용하고 있습니까? 하느님 역시 끊임없이 일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게 기적이다.’ 라는 시를 나눕니다.
-참 고맙다/놀랍다/자랑스럽다/하느님이 그 누가/하느님 솜씨를/하느님 사랑을 따를 수 있으랴 하늘 아버지/땅 어머니 사이에서 낮에는 햇빛 은총/밤에는 별빛 위로 중에 둥글둥글 탐스럽게 익어가는/황금빛 배 열매 형제들 무럭무럭 자라나는/초록빛 가득한 배추 자매들 바로 이게 기적이다 늘 봐도 좋고 새롭고 보고 싶다/하느님의 솜씨/하느님의 사랑-2011.10.6
눈만 열리며 온통 하느님 업적의 일로 가득한 세상이요, 이 하느님 일꾼께서 우리를 분발시켜 맡겨진 일에 매진케 합니다.
삶은 무엇입니까?
삶은 갈망입니다. 삶은 깨어남입니다. 삶은 기도입니다. 삶은 일입니다. 갈망의 씨앗이 푸르른 희망의 잎으로 깨어(피어)나, 믿음의 기도로 꽃피고 사랑의 일로 열매 맺을 때 비로소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삶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굳세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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