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유다스는 두려웠지요.
아닌데...내 계획은 저게 아니었는데....
내가 아무리 돈에 환장한 놈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스승을 팔아먹을 만큼 파렴치한 놈은 아닌데....
왜 저 분이 저렇게 왜 돌아가실까!
예수님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도 유다스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해석을 해요.
예수님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성모님과 열 한 제자가 있는다락방으로 찾아갔으면.....
‘그래, 내가 맞아죽는 한이 있어도 찾아 가겠다’ 했으면
성질 급한 베드로는 문 열고 들어오는 유다스를 두드려 패려고 그랬겠지만
누가 몸으로 막아주었겠습니까?
성모님이 막아주시면서
“야, 베드로 너 이놈 너는 뭐 잘한 게 있다고...
자식, 너 세 번이나 배반했잖아..너도 할 말이 없어.!”
이렇게 찾아갔으면 되는데 유다스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해석을 했지요.
‘안 돼, 나는 절대 용서 못 받아.. 나 같은 놈은 절대 살아갈 길이 없어!’
마지막으로 스스로 내린 결론이 뭐예요.
‘죽는 거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유다스는 단 한 번 주님을 배반했지만
시작부터 마지막 끝까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고백소에 줄을 서면
마귀는 유다스에게 유혹했던 그런 마음을 집어넣습니다.
‘너 참 뻔뻔하다.....너 그렇게 죄를 많이 짓고도
저 안에 쭈그리고 몇 분 있다 나오면 그 죄 사해질 줄 아냐?
참~~낯짝 두껍다... 넌 용서 못 받아..’
이렇게 마귀는 유혹합니다.
그것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뭐예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내 죄가 비록 진홍색처럼 붉어도 주님 나 살려주신다.’
탕자가 돼지 쥐엄나무열매로라도 배를 채우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생각이 난 겁니다.
아버지 집을 향해서 가는 탕자의 발걸음이 어디 가벼운 발걸음입니까?
죽기보다 싫었겠지만~~
탕자는 내 가서 아버지 집에서 두드려 맞는 한이 있어도~~
아버지 집을 찾아갑니다.
후회는 자기중심적으로 죄를 지어놓고도
자기 자존심이 상한 것이 기분 나쁜 거지.....
하느님은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것이 반복이 되는 사람은 계속해서
똑같은 죄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성사 보고 며칠 있으면 똑같은 성사 보게 되지요.
늘 어둡고 부정적인 삶이 되고 계속 반복되는 후회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반대지요.
뭘 회개라고 그래요?
누가 그럽디다.
회 먹고 그 다음날 개 먹는 거라고...
그게 회개예요?
회 한 사발 먹고 그 다음날 개 잡아 먹는 게 회개예요?
아니죠?
회개는 하느님 중심적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죄를 지을 때마다
‘아,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얼마나 슬퍼하셨을까!’
내가 누굴 미워할 때마다 성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주일 안 나가고 몇 달이 지났어요.
‘아, 예수님이 얼마나 슬퍼하셨을까!’
하느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회개예요.
베드로사도는 첫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배반했어요.
첫 닭이 울고 난 다음에 땅을 치고 통곡을 하며 울었지요.
뭐가 생각이 났겠습니까?
예수님의 그 눈이 생각이 난 거예요.
“나 저 인간 나 모르오.” 했을 때 예수님의 입에서 차라리
“이 나쁜 놈아,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욕이라도 먹었으면 덜 미안했을 텐데.....
예수님은 연민 어린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셨어요.
사람이 너무 슬프고 배신감이 크면 욕도 안 나와요.
그거 아세요?
‘허~~허...’
말도 안 나와요.
배신감이 너무너무 클 때는 ‘죽일 놈, 살릴 놈..니 놈 저 놈’
소리도 안 나와요.
예수님은 베드로가 세 번 배반했을 때 그
냥 글썽거리는 눈으로 베드로를 쳐다봤지요.
첫 닭이 울 때 베드로가 무릎을 꿇고 땅을 치며 통곡을 한 것이
그 예수님의 눈이 생각 난 거예요.
“차라리 나한테 욕을 하시지...니 놈이 나한테 이런 짓을 할 수 있냐?”
차라리 귀싸대기 한 대 갈기시지~~
내가 당신 모른다고 할 때 우리 주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게 아프셨을까!
그게 못 견디게 괴로웠던 거예요.
이게 바로 회개예요!
예수님의 중심, 예수님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는 것...
성모님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는 것......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시 기운을 북돋우어 주기 위해서
“내 양들을 쳐라!”
하는 것을 세 번 물었죠.
세 번 배반한 것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어요.
영적 자존심을 살려 주셨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배반했지만
1대 교황으로서 우리 교회의 초석이 되고 반석이 되셨어요.
그만큼 후회만 하는 삶과 회개하는 삶은 이렇게 극렬하게 벌어집니다.
회개해서 내 질그릇 안에 더러운 것을 전부 다 씻어내도록 합시다.
씻어내서 끝나는 게 아니요.
마태복음 12장 43절 그 이하를 보면 회개를 통해서
빈 그릇인 된 채 그대로 내버려두면
오히려 일곱 마귀가 다시 기어들어온다고 그랬어요.
그렇지요?
회개하고 피정 통하고 총고백을 해서
‘아, 이제 깨끗해졌다.’
이걸로는 안 돼요.
집이 깨끗해진 걸 알면 마귀가 쫓겨났다가 일곱 마귀 동무들을 끌고 들어온다고 그랬어요.
회개를 통해서 깨끗해진 그릇을 채워야 되요.
질그릇을 하느님의 은혜로 채워야 합니다.
그건 뭡니까?
갈라디아서 5장 22절
사랑, 기쁨, 평화, 선행, 진실, 온유, 절제......
이런 것으로서 채워놓아야만 마귀가
‘아, 저 인간은 내 것이 아니구나!’
그래서 완전 포기합니다.
어떤 이는 피정 잘 받고 그 다음 후속조치를 안 해요.
그러니까 귀만 고급이 되어서, 교만만 더 늘어나고~~
열매를 맺는 건 아무것도 없고~~
늘 어떤 말씀의 자극을 받고 싶으니까
좋은 강론 있으면 찾아갑니다.
열매를 맺는 게 중요한데....들으면 열매를 맺어야지요!
그리고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간구해야 됩니다.
은혜 받을 수 없는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장애물은 대부분 나와 마귀가 설치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내가 회개를 하면 없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령의 짝이신
성모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청하셔야 합니다.
그럼 어떤 기적이 일어날까?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날 거예요.
물과 포도주는 분명히 다른 것이지요?
죄인의 상태에서는 그 질그릇 안에 썩은 냄새가 났지만......
내가 도움을 청하고 성령이 주시는 많은 열매로 채울 수 있다면
‘아, 이 죄인의 영혼 안에도 주님 부활하셨습니다...감사합니다!
하는 말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배티 성지 - photo by 느티나무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