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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머니, 예수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29 조회수508 추천수3 반대(0) 신고

 

 

 

 

 

+ 루카 : 10,21-24

 

 

일흔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몸소 가실 고을에 미리 가서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10,9) 복음을 선포하고는

파견받아 나갈 때와 똑같이 짝을 지어 예수님께 돌아왔다.

 

둘씩 기뻐 뛰며 속속 돌아와 보고할 때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 안에서 즐거워 어쩔 줄 몰라하신다.

마치 학교에서 돌아오는 자식들을 

두팔 활짝 벌려 맞이하는 어머니같은 모습이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그들은 신이 나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대체 자기들이 마귀들을 어디서 만났단 말인가?

병마에 사로잡힌 환자들이 낫게 된 일을 두고 하는 말일거다.

 

이것은 아이들이 어머니에게 자기가 한 일을 부풀려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칭찬받고 싶어서다.

어머니이신 예수님께서 그 마음을 모를리 없으시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마귀들의 두목인 사탄이 당신 자녀들의 활약 때문에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과장도 아니고 기분좋으라고 넣는 추임새도 아니다.

 

그렇다. 어머니같은 예수님은 그들보다 훨씬 더 기뻐하셨다.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제자들이 훨씬 일을 잘하고 돌아와서가 아니다.

그들이 정말로 깜짝 놀랄 기적을 행사해서도 아니다.

 

모세를 도왔던 일흔명의 원로들처럼,

열두 제자들을 도와 일할 일흔명을 뽑아놓았던 것이 엊그제이다.

몸집만 컸지 철부지 같이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그들이 

당신 품을 떠나서 큰 실수 없이 일을 해냈다는 것이 그저 좋으셨던 것이다.

첫걸음을 뗀 아기를 보고 신통망통해 하는 것과 같은 마음인 것이다.

 

 

어머니의 칭찬을 받는 일흔 제자들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가슴이 터질 듯 뿌듯하고, 의기 탱천해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격려와 지지로 제자들에게 용기를 주신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정말로 정말로 그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충천해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끝나고 말면 지혜로운 어머니는 아닐 것이다.

그들이 한 일에 비해 과도한 칭찬을 하고 끝내고 말면

아니 한 일이 정말로 대단하다 하더라도 칭찬 일색으로 끝나고 말면

철부지 같은 제자들은 진짜로 자기가 대단한 존재나 된 듯 착각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쫓아낸 마귀들의 자리를 그들이 대신 차지하게될 것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어머니의 말씀은 차분히 이어진다.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기뻐하는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받아주면서도

정작 눈을 돌려야 하는 일은 언제나 '하늘'이라는 것을 가르치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과 그분의 나라와 의를 실현하였는지 아닌지....

즉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는 일이야말로 참된 기쁨임을 차분히 가르치시는 어머니다. 

 

 

그리고 당신 역시 하늘에 눈을 돌려 감사의 기도를 바치신다.

기도 안에 비로소 어머니 예수님의 마음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 어머니 예수님의 슬기와 지혜는 이 기도 안에서 찬란히 빛을 발한다.

기도는 물론 아버지 하느님께 하시는 말씀이지만,

또한 함께 기도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한 교육도 담겨있다.

 

즉 당신 제자들이 실은 '철부지'라고 고백하신 것이다.

이는 겸손해서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 아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그들을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들의 활약으로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치켜주셨던 이들이지만

실은 '지혜로운 이들'도 아니고 '슬기로운 이들'도 아님을 깨우쳐주시는 것이다.

그러니 제자들은 자신의 공로에 도취되어서도 안 되고,

칭찬과 격려를 받고 교만에 빠져서도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그들이 '철부지'이기에 아버지의 보호와 도움이 꼭 필요함을 아신다.

그러기에 이들을 잘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시길 하느님께 청하신 것이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은 예수님께서 청하지 않으셔도 그렇게 해주실 분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그 일이 이루어진 줄 알고 있지만, 아버지와 함께 기뻐하며 감사하는 어머니이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그분께 모든 권한을 넘겨주셨고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런 친밀한 관계였음에도

항상 아버지께 보고하고 감사드리는 예수님이셨다.

이런 겸손한 모습은 제자들이 그대로 보고 배워 자신들의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이 지금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확인해주신다.

이는 당신 자녀들이 어떤 동기로 일을 해야하는지를 깨우쳐주시려는 말씀이다.

 

우리들이 일해야 하는 동기는 자기 자랑이나 만족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다른 누구, 심지어 예수님의 시선이나 칭찬이 모든 이유여서도 안 된다.

또는 자기들이 하는 사도직이 얼마나 중요한 사명인지를 되뇌고 

다른 이를 위해 얼마나 큰 유익이 될 것인지를 가늠해보는 일이 첫째여서도 안 된다.

 

그보다는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이자 벗, 스승이며 형제인 예수님과 함께 하는 행복,

주님이며 하느님이신 그분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행복, 

앞서간 수많은 예언자도 임금도 누리지 못했던 그 '행복'을

내가 지금 맛보고 누리고 있다는 벅찬 감격을 알아채는 것이

그로서 나의 자존은 성립되고 가치는 빛나며 꿈은 달성되는 것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럴 때 세상의 어떤 박해도 시련도 고통도....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세상의 어떤 칭찬도 갈채도 영광도.....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지금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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