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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아, 힘을 내어라![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30 조회수479 추천수1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오늘 미사 때, 보좌신부님은 잘 알거고 그 옆에 부제님이 한 분 서계시죠?

한번 일어나보세요. 일어나서 인사~

부제님은 여기 부제님이 아니고 청주 가경동성당에 부제님이예요.

청주에 있을 때, 내가 신학교 보내가지고 이렇게 부제가 되어서 방학 동안에 여기서

실습을 시키려고.....제가 불렀어요.

신학교 입학시키고 미사 드리면서 내가 저 부제를 신자들앞에서.....업어줬어요.

"오늘 내 등에 업힌 것 너 절대로 잊지 말고 아무나 안 업어주는 거니까 너 자꾸

분심이 들더라도 신부님 등에까지 업혔으니 나는 오기로 이 길을 가야된다...

하는 마음으로 살아라!"

했는데 이제 부제가 돼서 실습을 나온 겁니다.

이제현 요한금구

요한 금구가 원래는 요한 크리스토스토마스, 요한 크리스토스토마스를 금구라고 그래요.

‘금으로 된 입이다.’라는 뜻이죠.

그만큼 요한 크리스토스토마스는 카톨릭에서 알아주는 대 설교가 ...

얼마나 말을 잘했으면 ‘입이 금으로 됐다.’

 

저 부제님을 이렇게 보면 저도 옛날 부제 때 생각이 나요.

오래전 얘기죠? 벌써.....한 26년 됐네요.

26년 전에 부제생활을 재미나게 잘 했어요.

부제가 되고나서 일 년 있다가 사제가 되는 거 아시죠?

아주 옛날에는 부제라고 하는 것이 사제가 되는 한 과정이 아니라 아예 부제 직으로

한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옛날에는 부제는 교회의 재산관리를 했어요.

부제들이 재산관리를 하다 보니 부제들의 권력이 너무 쎄졌어요. 원래 돈 잡는 사람이 쎄요.

그래서 교회에서 자꾸 부패가 생기니까 어떻게 했느냐?

사제되기 일 년 전에 그 단계로 변해버린 겁니다.


부제님은 영대를 어떻게 매요?

옆으로 매요.

왜 옆으로 매요?

부제품 받을 때 옆으로 매줘요.

이제는 너 금간 인생이야 그 뜻이야.^^

넌 이제 금이 가있기 때문에 세상 것 바라봐도 이제 헛것이야.

넌 인생 종쳤어. 세속적으로 이제 금 갔어. 그 뜻이야.

그러다가 사제 서품식 날 삐딱했던 영대를 앞으로 해주죠.

그러니까 저 영대가 이제 앞으로 내려오는 거예요.


저도 열심히 부제생활 잘 했었는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려니까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너무너무 아파서 일어날 재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이것저것 종합검사를 다 했더니 무슨 병일까요?

디스크라고....막막합니다. 서품 5개월 남겨놓고.....

 

그래도 교회에는 알리고 싶지 않아서 기를 쓰고 나가서 강의도 듣고 또 논문도 준비해야 되니까

논문도 쓰고...그러다 너무 무리해가지고 9월 달부터는 그냥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그때 신학교

근처에 어느 한의사신자분이 와가지고 가끔 지압해주고... 침놔주고.. 그런데도 마비가 점점

더 오고 .... 지금은 레이저 같은 걸로 해서 디스크 잘라내고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오래전

얘기니까 수술하기가 아주 어려운 부위다!

후배들이 타다주는 밥을 침대에서 먹으면서 부제로 지냈어요.


저는 혹시 주교님이 ‘서품을 못주시겠다.’ 하는 소리가 들릴까봐 전전 긍긍했는데 주교님이

그래도 사제서품을 주시겠다!

그 주교님이 누구겠어요?

정진석추기경님, 청주교구 주교였다가 대주교가 돼서 서울교구로 가셨죠?

아, 그래가지고 사제서품 제의도 준비하고 서품 상본도 준비하고

수녀원에 미사드릴 데도 다 정해가지고 서품피정까지 받았어요.

그때 우리 동창 신부님이 나까지 네 명인데...그중에 한분이 지금 석산온천 반대하는

양업고등학교 교장으로 계신 신부님이 내 동창, 여기 보좌신부님 제일 큰형이 내 동창

그리고 또 한분...그렇게 네 명이 서품 받기 바로 전날 교구청에 가서 잤어요.

 

넗은 방에서 넷이 자고 있는데 새벽에 누가 나를 잡아 흔들어 깨워요.

잠결에 깨보니까 그 당시 사목국장신부님인데 그분이 내 발을 잡아 흔들면서 나만  조용히

나오래요....부르려면 넷을 다 깨워야 되는데 나 혼자만 나오라는 거예요.

시계를 보니까 다섯 시 반, 응접실에 앉았더니 그 신부님이 담배만 서너 대를 계속 피면서

말을 못하세요.

저는 너무너무 불안했죠.

'이 새벽에 나를 깨웠을까!!!

“아이구 나 내가 내입으로 이걸 어떻게 얘기해야 되느냐? 딱해죽겠다.”

“신부님 왜 그러세요? 뭔 일 있습니까?”

“주교님이 너 서품 못주겠대.”

“이유가 뭡니까?”

“너 허리 때문에 안 되겠대.”

주교님도 밤새 고민을 하셨나 봐요.

“저 허리 병신 신부 만들어 봤자... 병치닥거리 밖에 더 하겠노!”

그러니까 새벽에 그 신부님 불러가지고

‘나 서품 못주겠다. 당신이 가서 얘기하시오.’

그 얘기를 딱 하시길래 저는 주교님 방을 뛰어 들어가려고 했어요.

신부님이 뒤에서 끌어안습디다.

“김부제 이런다고 해결되지 않아.”

“아니 저는 인격이라는 것이 없습니까? 차라리 안 준다면 몇 개월 전에 보류를 하시던지

지 어떻게 몇 시간 남겨놓고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주교님 만나봐야겠습니다.”

“들어가 봐야 소용없어. 주교님 마음 굳히셨어.”

수원에 있는 빈센트 병원으로 끌려갔죠.

도착하니까 한 열시정도가 됐어요.

그때 청주 주교좌성당에서는 무슨 식이 진행되고 있었을까요?

사제 서품식


제 부모님들은 인천에 계셨으니까 인천에서 그 전날에 오셔서 앞자리가족석에 쫘악 앉아계셨어요.

그 뒤에서 사제단이 먼저 입장하고 초를 든 새신부가 입장할 때 아무리 지켜봐도 세상에~~~

누구만 없는 거예요?

내 아들이 없어요.

아들친구 셋은 입장을 하는데 김웅열이만 없는 거예요.

그때 난리가 났었어요...별의별 이야기가 다 있었지요.

‘그 부제 인물 반반하더니 여자가 꿰차고 도망을 쳤다.’

 

저는 그때 병원에 끌려가서 그 시간에 개인 독방에 들어가 앉아

‘참 어떻게 이런 일이 나한테 있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저는 확신했던 게 있었습니다.

뭐냐면 저는 신학교에 들어온 동기가 참 특이했어요.

우리 아버지가 높은데서 떨어지셔서 아버지만 살려주시면 내가 사제가 되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죽었던 아버지가 살아난 것을 봤기 때문에, 내가 신학교에 들어왔으니까

죽은 아버지도 살려낸 하느님이시라면 이까짓 허리정도야 그분 맘만 먹으면 허리 낫게 할 수 있다.


병원에서 한 달 동안 버텼어요.

주교님 생각은 일단 부제품을 보류시켜놓으면 지가 지발로 관둘 것이다.

부제품을 받으면 성직자이기 때문에 특별히 여자문제나 뭐 이런 것이 아니면 주교님도

마음대로 못 쫒아내요.

주교님 생각은 병원으로 보내면 지가 지 입으로 ‘나 고향으로 가겠다.’ 이 말이 나오기를 한 달

동안을 기다리셨는데, 병원비는 자꾸자꾸 올라가는데, 집에 간다는 얘기는 들리지를 않고....

주교님이 발령을 냅디다.

‘주교좌 성당에 가서 일해라.’

 

그 당시 의사들은 저에게 와서 설득을 했어요.

“부제님 인생 사는 길이 신부만 있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부제님 그 몸 가지고는.....

어디 가서 어떻게  사목을 합니까?”

“전 그래도 가야됩니다.”

진통제를 한보따리를 싸가지고 주교좌성당에 갔더니 거기 본당신부님이 주교님에게

어떤 지시를 받으셨는지 참 모질게 시집살이를 시키십디다.  엄청나게 일거리를 많이 줬어요.

절뚝절뚝거리면서 허리에 코르셋을 차고 하루에 진통제를 일곱 알 여덟 알을 먹어가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공소를 다니며 두 달 동안은 제가 버텼죠.


원래 제가 서품 받는 날이 1983년도 1월 26일이에요.

83년도 1월 26일.

병원에 가서 한달 있었고, 주교좌 성당에 일을 하다가 5월 달이 들어섰는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려니 전신마비가 와서... 너무너무 서러워가지고, 사람 사는 게.......

그냥 드러누워서.... 눈물만 하염없이 나와요.

‘아, 이러다 내가 죽겠다. 나 집에 갈래. 엄마 아빠한테 갈래...나 최선을 다했어. ...내 쪽에서

내가 성소 포기한 거 아니야..하느님 약속 지키려고 기를 쓰고 애를 썼지만 몸뚱아리가 이런 걸

어떻게 해요... 주님 , 저 이제 집에 갈래요.’

보따리를 다 싸놓고 주교님한테  ‘나 가겠습니다.’

인사를 하러 갈려고 하는데 거기 내덕동 주교좌성당 신자들이 꽃가마에다 뭐를 이고 오는 거야.

뭔가 봤더니 김대건 신부님 유해를 모시고 오더니 제대 앞에다 이렇게 모셔놓는 거예요.


주교님한테 집에 간다고 얘길 하려다가 김대건 신부님 유해를 보니까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

‘저 양반이랑 나랑 같은 종씨잖아? 주교님한테 간다고 하기 전에 먼저 대건이 형한테 먼저

부탁이나 해보자!’

그래서 밤 11시에 몰래 성당 문 열고 혼자 들어갔죠.

그 주교좌성당도 이렇게 난간이 있고 오래된 성당이라....여기와 비슷해요.

그 마룻바닥에 담요하나 뚤뚤 말고 그 앞에서 내 나름대로 삼일동안 철야기도를 하면서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를 쳐다보고 허리 낫게 해달라는 말은 차마 안 나옵디다. 

남사스러워 가지고..... 그러니까 그냥 푸념만 얘기한 거 같아요.

“아이고 형님, 형님은 그래도 나보다 나아 ....비록 서품 받고 일 년 만에 돌아가셨지만

미사를 해 봤잖어.,,,나는 꿈이 미사 한대드리고 그 다음날 죽어도 원이 없을 텐데  이 허리가

이러니... 그래도 형님이 나보다 나아.”

 

내가 담요를 똘똘 말고 새우잠을 자고 있었는데 셋째 날 새벽에 눈을 떠보니 이상하게 몸이 개운해요.

디스크 환자는 환자분들은 아시겠지만 바로 못 일어나요.

너무너무 아프기 때문에....한 바퀴 빙그르 굴러서 손으로 딛어야 일어나요.

그날은 기분에 바로 일어나질 것 같아서 일어나보니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지더라구요.

그 다음에 오른쪽이 항상 감각이 없었는데 꼬집어 봐도.... 오른쪽 다리를 꼬집어보니까 감각이

살아났어요.

일어나서 빈 성당 한가운데를 왔다갔다 해봤죠.

디스크 환자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지만 디스크 판이 튀어나와서 걸을 때마다 신경을 꾹꾹

눌러주니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몰라요.

치과에 가서 조그만 신경하나 건들어도 자지러지죠?

디스크는 큰 신경을 꾹꾹 눌러대니까 걸을 때마다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어요.

그날 아침에는 왔다갔다 걸어도 허리가 안 아픈 거예요.

껑충껑충 뛰어도 허리가 안 아파.

일주일 동안을 아무한테 아무 말도 못했어요.

왜냐하면 의학 쪽에서도 보면 왜 상상임신, 상상으로 최면이 되잖아요.

너무 애기가 갖고 싶으면 ‘우웩... 우웩....’ 그렇듯이

나도 너무 낫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내가 통증을 못 느끼는구나!

내가 얼마나 낫고 싶었으면 통증을 못 느낄 정도가 될까?

진통제를 끊어봤어요.

진통제를 하루 종일 안 먹어도 허리가 안 아퍼.

그래서 일 년 반 동안 차던 쇠로된 코르셋, 허리복대라 그럽니까?

저는 잘 때도 그걸 차고 잤어요.

전 그걸 안차면 일어나지도 못했어요.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코르셋을 풀어봤는데도 허리가 꺾이지 않는 거야.

‘내 몸에 분명히 이상이 생겼다!’

 

청주에 있는 신경외과를 찾아가서 정밀검사를 좀 하게 해 달라.

닥터가 정밀검사를 하고 나오더니

‘부제님, 이거 어떻게 된 일입니까? 튀어 나왔던 디스크판이 제 자리로 들어가서

지금은 정상이 되었습니다..아니 어떻게 며칠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지...

어떻게 치유 받으신 겁니끼?

“대건이 형이 고쳐 주었어요.”

“대건이 형이 누굽니까?”

그렇게 의사로부터 치유판정을 받았어요.


일주일 있다가 교구 체육대회가 있었어요.

운동장에서 본당신자들이 쫙~~천막을 치고 각종 경기 중에 릴레이도 있었는데...

내가 나았다는 걸 주교님한테 알려야 된단 말이야.

잘 뛴다는 걸...마지막 계주할 때 바턴을 잡아가지고 주교님 앞에서  막 흔들었어~~

처음에는 주교님이 나라고는 생각을 못하셨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내가 잘 뛰거든요...저는 원래 달리기를 잘 했어요. 

“아니, 저 병신이 저렇게 잘 뛰어?”

주치의가 주교님 옆에 계시다가

“의학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데 저 부제님은 완치가 되었습니다."

그날 밤에 주교님이 저를 부릅디다.

“의사 얘기 들어보니 디스크가 다 나았다고 하니 일주일 후에 서품식을 거행하자.”

그게 바로 5월 14일 마티아 축일이지요?

마티아가 누구 대신... 유다스 대신에 ...막차 탔잖아요?

그 꼬라지가 내 꼬라지야! ^^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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