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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동응답기/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01 조회수568 추천수12 반대(0) 신고



단순하게 그리고 조금 천천히 여유 있게 ‘안단테andante’로 살아가자고 마음을 먹어도 살아가다보면 여전히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 앞에 서서 어느 새 ‘프레스토presto’로 변해 있는 삶의 기호를 확인하곤 한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나를 비추며 조율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럴 때마다 썩 권장할 만한 방법은 아니지만 일단 외부와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하고 한 템포 쉬어 가면서 숨고르기를 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전화기를 자동응답기능으로 전환시켜 놓는 것이다.

차 한 잔을 끓여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앉아 저 앞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에 넋을 놓고 빠져 들다보면 아무리 복잡한 마음이라도 금새 입가에는 웃음이 피어오른다.

자동응답기가 작동을 한다. 친구 신부에게서 걸려온 전화인데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듣고는 다짜고짜 웃기부터 한다. 내가 들어도 어색한 나의 외교적인 음성과 지극히 사무적인 단어 선택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두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인데 이 양반은 또 한국어, 영어, 이탈리아어 이렇게 삼개국어로 남겨 놓은 내 메시지만 듣는 데도 만원 돈이 들게 생겼다면서 제발 짧게 좀 해달라고 불평만 하고 끊는다. 세 번째 전화는 한술 더 떠서 웃음소리에다 ‘잘났다’는 비난까지 섞어 놓았다. 그 다음 세 통의 전화는 모두 아무런 말도 없이 끊어졌다.

이렇게 하루 동안 모두 여섯 통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모두들 기계를 상대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남기기를 원하지 않는 느낌이 잘 전해져 왔다.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상대방의 응답이 없는 자동응답기의 한계가 바로 이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동응답기에 대고 혼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내용을 실감나게 전달하지는 않는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상대방의 응답은 이렇게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기도를 해도 좀처럼 재미를 느낄 수 없고 그래서 다분히 의무감으로 바치는 염경기도나 운전하면서 바치는 화살기도가 전부라는 하소연을 듣는다. 그런 경우의 대부분은 아직도 기도가 하느님과의 생생한 대화가 아니라 나만의 일방적인 의사전달이나 청탁에 머물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기도를 통해서 당신에게 다가오는 영혼들을 위해 건네 줄 당신의 응답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대부분의 기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방적으로 대화를 끊어버린다. 살아있는 하느님의 목소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자신만의 일방적인 독백이 되어버리는 기도가 어떻게 매번 재미있을 수 있겠는가. 하느님은 자동응답기가 아니다. 기도는 자동응답기에 대고 남기는 일방적인 메시지가 아니다.

당신이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기를 원할 때마다 하느님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응답으로 당신과의 통화에 임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끊어라. 때로는 침묵 중에 사랑하는 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여라. 기도는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차라리 잘 듣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 주시는 줄 안다. 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마태6,7-8)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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