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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201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01 조회수310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12월 1일 대림 제1주간 목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1.24-2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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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주님의 말씀을 읽고 생각에 빠지다 보면 가끔 충격적인 상황에 홀로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이가 하느님의 백성으로 태어나는 행복한 민족 "이스라엘" 그 민족이 되었다는 것 자체로 하느님의 보호를 약속받은 혈통에 속하는 것이며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율법을 지키며 사는 것 만으로도 구원의 희망을 지닌 삶을 살게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하는 일도, 사는 모습도 달랐지만 그저 그런대로 살다보면 훗날에 좋은 날도 오겠지, 그리고 그 다음 수를 다하고 죽으면 구원도 오겠지 하며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던져진 이 말씀 하나가 그들이 알고 있던 모든 것에 혼란을 가져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태어나면서 구원을 보증받지 못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전체 민족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어린 아이부터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는 노인에게까지 말입니다. 더욱이 삶의 고단함에 시달리다 마지막 남은 희망 하나가 구원이었던 사람에게는 더욱 힘겨운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 하나에 성전을 다니며 '주님'을 부르기를 그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태어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하느님의 기준임을 밝히셨습니다. 이것은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백성이 된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기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이야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고 분명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것이 하늘 나라의 구원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 생각해도 충격적이고 불안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기에는 우리의 근본을 뿌리채 흔들어버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만큼 심각한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말씀의 의미에 집중하기보다 다음 말씀으로 급히 생각을 옮겨 버리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씀을 이해하려 합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의 이야기는 모두 하나의 출발점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중요한 것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이나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이 하느님 말씀의 실행에 있다는 것을 듣고 실행하는냐 하지 않는냐의 차이입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가 살지 않는가가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 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하느님을 굳게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굳건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말입니다. 믿음이 약하다면 모래와 같은 신앙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이미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 버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던져진 이 이야기는 그들의 믿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 대로 살고 있는가 아닌가를 묻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차이나 강하고 약함이 아닌 하느님 말씀대로 사는 것, 곧 "삶"이요 "인생"의 모습이 하느님의 기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곡해하기 시작하면 심지어 이 이야기의 결론 또한 엉뚱하게 만들어 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삶에 있어서 어떠한 방해도 없이 늘 탄탄대로로 걷게 되고 구원도 얻게 된다고 말입니다. 시련도 없고, 항상 어려움 없는 삶이 하느님의 보호로 작용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석이든 모래 든 바람만 불지 않고, 물이 들이치지 않는다면 어떤 집이 무너지겠습니까? 튼튼한 집의 기준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의 말씀 속에는 분명 인생에서 맞이하는 모든 고난의 수가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삶에 있어서 하느님의 말씀대로 사는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잃지 않고, 그 방법으로 그 상황을 헤쳐나갑니다. 때로 고난을 자초하기도 하는 삶으로, 때로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때로 고난을 고난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삶에 있어서는 세상의 논리로 사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 줄곧 하느님을 찾으면서도 삶에서는 치열하고, 지독한 이기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그 속에 수많은 상처를 입고, 또한 남기고 살면서 언제라도 좌절하면 그 즉시 하느님께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안고 살아갑니다.


모래에 집을 짓기란 바위에 집을 짓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우선 뿌리를 둘 곳에 막힘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기란 참 어렵습니다. 집보다 그 단단한 바위를 뚫는 것이 우선이니 시작부터 어려움이 보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모래 위의 집에 사는 사람들이 바위 위에 집을 짓는 이들보다 항상 더 높고 크고 대단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어떻게 사는가가 사람들의 진정한 관심사라면 하느님의 사람이라면 하느님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하느님의 사람 답게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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