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짜 마리아'에게 '영적인 눈'이 먼 사람들 | |||
---|---|---|---|---|
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11-12-02 | 조회수35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30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마태오복음서 9, 27 - 30> ................................................................
눈 먼 이들이 주님을 간절히 찾으며 부르지 않으면
그들은 결코 영적인 소경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다 '가짜 마리아'에게 '영적인 눈'이 먼 사람들 예전에 이런 일들이 있었다. [ 창세기 3장15절 말씀,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에서 이 구절에 대하여 예수님이 아닌, 마리아에 관한 거짓말을 지속적으로 펼친 이들이 있었다.
교회의 가르침은 아래 다음의 문장에서 명백하게 가르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디에서 거짓된 교설을 받아왔는지 계속 마리아가 뱀을 물리친다고 주장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육적인 눈으로 보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도 여전히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교리서 410의 교회 가르침에도 부정하는 것이다. 교리서 410 인간이 타락한 뒤에도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를 부르시어 악을 이기고, 타락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리라는 것을 신비로운 방법으로 말씀하신다.창세기의 이 구절은 ‘구속자 메시아’에 대한 첫 예고, 곧 뱀과 여인 사이의 싸움과 이 싸움에서 마침내 이 여인의 후손이 승리하리라는 것을 처음 알리는 것이어서 ‘원복음’(原福音)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왜, 하느님의 말씀("여인의 후손")을 보면서도 이를 겸손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떤 곳에서 거짓된 교설을 수용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며 이 진리에 대하여 불순종하게 되는 것일까. '믿음의 순종'은 먼저 진리(아버지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탁인 믿음이 요구된다. 진리에 반대되는 거짓된 메세지나 혹은 거짓된 교설(강의, 책 등)의 가르침에 대한 단호한 거절을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말씀)을 실행하는 순종이다. 하지만 유혹에 빠지면 자신도 알게 모르게 '진리의 믿음'이 없어지고 '진리에 불순종'하게 되어진다. 하와나 아담이 불순종하게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뱀이라는 존재가 인간이 알아듣는 말(언어)를 한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메세지로써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같다. 그런데 그 메세지는 뱀의 말이고 하느님의 말씀인, 진리에 불순종 하도록 유혹하는 거짓된 메세지인 것이다. 인간은 이처럼 뱀이라는 존재와 대화(강의와 경청)를 하였고 진리에 반대되는 뱀의 거짓된 메세지를 받아들였다 하겠다. ............................................................................
'가짜 마리아'는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아니신 '다른 예수'를 언급한다. 그런데 그들은 마리아에 대해서는 절대로 가짜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같은 주장은 남쪽의 이단으로 파문받은 '가짜 마리아'를 옹호해 주고 있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가짜 마리아'가 없다고 하는데 마리아를 하느님 보다도 더 전지전능한 수준으로까지 치켜 세워 결코 마리아에게는 '거짓'이 덮지 못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그럼 창세기 때에 뱀은 왜 나타났을까. 하느님의 전지전능함이 계신데 뱀이라는 존재가 '뱀의 교설'로 최초의 인간을 유혹하여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였다. 그 뱀이 자기 이마에다 '뱀은 사탄이며 하느님의 적대자'라고 표시했던 것이 아님에도 인간은 뱀에게 미혹되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지 못하였다. 믿음을 실행한 순종이 아니라, 진리(아버지의 뜻)를 실행하지 않은 불순종이다. 천주교 신자들, 가톨릭 교인들은 성모님을 상경지례로 공경한다. 성모님은 우리와 함께 기도할 때에는 전구해 주시는 모성적 사랑을 지니고 계신다. 분명히 성모님은 살아계신다. 예수님께서도 살아계신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경계하도록 알려주고 있다. '다른 예수'가 있다면, '다른 마리아'도 있게 되는 것이다. 금세기는 이 '다른 마리아' 다시말하면 '가짜 마리아'에 대하여 '시대의 영적인 눈'을 열어야 한다. 원복음은 구속자 메시아에 대한 명백한 교회의 가르침이다. 그렇지만 뱀의 말(메세지, 강의, 책등)에서 유혹받은 인간은 옛 하와와 같이 창세기 3장15절인 진리의 말씀을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가짜 마리아'라고 하는 존재에게 묶여있어 자신의 영적인 눈을 뜰 수가 없는 것이다. 컵 속에 더러운 물(거짓)이 가득 차 있다면 자꾸 새로운 물을 컵에 담아 더러운 물을 정화시켜야 한다. 여기서 새로운 물이란 영적인 눈을 뜰 수 있도록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의미한다. 더러운 물을 자신이 스스로 빼어내지는 못한다. 예수님의 깨끗한 말씀을 자꾸 받아들여야만 컵 속의 물은 깨끗하게 정화되어지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 아버지를 부정하는 사람은 다른 이유가 없다. 가짜 마리아에게 미혹받아 예수님의 말씀(새로운 물)을 영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탕녀의 지체가 되면 그렇게 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