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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1주간 - 올 한 해 동안 나는 진리 안에서 살았는가?[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02 조회수317 추천수2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편안하시죠?
재미있어요?
하긴 어디 가서 돈을 주고 그렇게 앉으라고 해도 앉겠습니까?
집에 가면 다 푹신푹신한 소파에서 편안하게 있어야 되는데
이렇게 그냥 딱딱한 마루에서 많이 불편하실 거예요.

오늘 오후에 촛불 봉헌대를 축성을 했어요.

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여기 성당모양으로 아주 아름다운 촛불 봉헌대가 축성이 돼서.... 봉헌대 예쁘죠?

저 촛불 봉헌대가 앞뒤로 해서 다 들어차면 3500개가 들어가요.


기도찬미의 밤, 낮에 나갔다가 한 번 잡히면 큰일 나기 때문에......저는 절대로 밖에 안나가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촛불 봉헌대 축성 때문에 나갔다가 사진도 원 없이 찍어보고 그랬는데, 저를 만나신

분들이 하나같이 그래요.

‘아 신부님 텔레비전에서만 보다가 신부님 첨 봤습니다.’

하고서 반드시 따라 나오는 얘기가 한 가지가 있는데 뭘까요?

첫 번째는 실물이 훨씬 낫습니다.

‘대개는 못생긴 사람도 텔레비전에 나올 때는 찍어 발라서 이쁘게 나오는데 신부님은 텔레비전보다

실물이 훨씬 낫습니다.’

두 번째는 텔레비전보다 훨씬 더 젊어 보입니다.


가끔 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동창들이 신자인 순례단에 끼여서 와요.

많은 친구들이 할아버지가 되어서 손주가 둘이다... 셋째까지 다 보냈다.

그래서 내가 그 소리를 듣고 친구얼굴이랑 나랑 비교해보면 나랑 한 20년은 차이가 나 보여.

병원에 한 번 가 볼려 그래...나이가 안 먹는 게 혹시 병이 아닌가하고..... ^^


사람이 망덕의 삶을 살면 나이가 정지가 돼요.

망덕의 삶은 기쁨의 삶이예요.

이번 성탄 안에 제 책이 네 권이 한꺼번에 나오는데...그전부터 교우들이 그랬어요.

“신부님, 테이프와 잡지 같은데 기고하신 단편적인 글은 많은데 왜 책을 안내십니까?”

그럴 때마다 “책 낼 자격이 없었습니다.”

사실은 맞아요.

왜냐면 지난 25년을 뒤돌아보면 정말 저는 과분하게 사랑을 많이 받고 산 사제입니다.

또 수많은 강의를 하면서 강의가 끝날 때마다

‘오늘 내가 한 말처럼 나도 살아야지...’

하지만 뒤돌아보면 예수님은 갈수록 작아지셨고, 나는 갈수록 커졌어요. 그래서 늘 부끄러웠죠.

그렇게 잘 못사는 내가 뭐 잘난 척 하느라고 그걸 책으로, 활자로 내서 존재한다는 것이 부끄러웠어요.

또 한 가지는 지금 너무나 책 공해가 많아요.

생전 읽지도 않는 책, 책 공해에 보탬이 되는 그런 우려가 또 있었죠.


그러나 용기를 내서 성령께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시리라 생각하고 책을

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책을 낼 때 가능한 한 전철 안에서 펼쳐놓고 쉽게 읽게끔 부피도 그리 크지 않게, 성당 벤치에

앉아서도 읽고, 또 뒷집아줌마한테 한번 읽어보라고 전할 수 있는...

내 강론이 쉬웠기 때문에 책도 좀 쉽게 내자!.

저도 이렇게 책 네 권을 내는 것으로 올 한 해가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대림절이 되면서 제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을 늘 생각합니다.

교우들에게도 대림절은 지난 한 해, 또 새해를 맞이하면서 뭔가 정리하는 시기가 아닌가?

대림절을 보내는 것과 대림절을 사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기도 찬미의 밤, 2008년도 마지막 미사를 드리면서

또 마지막 강론을 하면서 저는 같은 마음으로 올 한해를 뒤돌아보고 싶습니다.


그 주제는 뭐냐?

올 한 해 동안 나는 진리 안에서 살았는가?


빌라도가 물었죠?

진리가 뭐냐고 예수님에게 물었어요.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다.’

이것은 과학적인 진리입니까? 윤리적인 진리입니까?

-과학적인 진리-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되고 양심적으로 살아야 된다.’

이 진리는 수학적인 진리입니까? 도덕적인 진리입니까?

-도덕적인 진리-


그런데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 과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지가 가르치는 내용과 살아가는 모습이 좀 달라도 돌을 맞지 않아요.

어느 학원에 수학선생님이 계신데 수학을 기똥 후려치게 잘 가르쳐.

아무리 수학 못하는 놈도 그 사람에게만 가면 수학박사가 돼.

그런데 그 선생님이 뭐냐?

생활이 아주 난잡해. 전국에 하나씩...그냥 카사노바 바람둥이야.

그래도 수학을 잘 가르치기 때문에 그 학원에 학원생들은 꾸역꾸역 몰려들어요.

다시 말하면 수학적인 진리를 사는 사람은 지가 사는 꼬라지와 가르치는 내용이 달라도

주변에 돌 안 맞아요.

뒤에서는 웅성웅성 대더라도 그렇게 지탄의 대상이 안돼요.


그런데 나나 여러분들, 다시 말하면 세례 받은 크리스천들은 세상을 향해서 진리를 외쳐야 돼요.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진리를 외쳐야하는 넓은 의미의 크리스천,

우리들은 우리들이 하는 말과 그 행동이 괴리감이 있을 때는 주변으로부터 엄청난 돌 세례가 날아와요. 맞죠?


베드로 전서 2장 12절에

‘이방인들 앞에서 행실을 단정히 해라.’

성서적인 의미로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다 이방인에 속합니다.

여러분 남편이 아직 세례를 안 받았다면 여러분 남편들도 이방인에 속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방인 앞에서 행실을 단정히 하라.’ 그랬어요.

자매님은 남편 앞에서 행실을 단정히 하고 사셨어요?

행실을 단정히 했으면 벌써 세례 받았을 거 같아.

행실이라는 것은 천주교 신자의 힘, 그 힘을 보여줘야 돼요.


예를 들어서 성당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 자매가 있는데

성당에서는 아주 신부님 사랑도 받고 아주 뭐 1등 이예요.

그런데 그 동네 가면 소문이 어떻게 나있느냐?

돈 빌려 가면 안 가져오는 여자, 입만 열었다 하면 남 얘기하는 여자....

그 동네 사람들은 성당 나가려고 하다가도 그 여편네 하는 꼬라지를 보고 안 나가요.

이방인인 남편이 성당 나가려고 마음먹은 지가 십 년 전부터인데

성당 나가려고 마음먹을 때마다 마누라 하는 꼬라지를 보면

아주 천주교 천자, 정내미가 다 떨어져요.

그래 뭐라 그래요?

“그래 너 성당 가서  라지온지? 레지온지....그런 거 한다며?

그 레지오인지 거기서서 시어머니 알기를 개떡 같이 알라고 가르쳤냐?

그리고 니 본당신부가 남편한테 그렇게 꼬박 꼬박 댐비라고 가르쳤냐?

내 안 나가고 이렇게 사는 게 낫지 나갔다가 너처럼 사람 버릴까봐 나 무서워서 못나가겠다.”

이건 보통 스캔들이 아냐.

 

스캔들이라는 라틴어의 뜻, 어원이 뭐냐?

‘걸려 넘어지게 하다.’

이방인인 남편 앞에서 성당 다니는 그 부인이 잘못 살았을 때, 그 남편이 하느님 앞에 가려다가 늘

걸려 넘어져.

시어머니가 성당 안다니는 며느리 냉담 하는 며느리 앞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때는

며느리가 수십 번 성당으로 다시 향하려고 하다가 또 걸려 넘어지는 거야.

‘이방인들 앞에서 행실을 단정히 하라.’

다시 말하면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윤리를 가르치는 우리들은

적어도 우리가 하는 말, 우리들이 가르치는 말을 지키려고 애는 써야죠.


저는 본당 신부도 하지만 동시에 사제로 한평생을 교우들을 전문적으로 가르쳤어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좋은 말을 많이 하고 살았겠습니까?

그런데 솔직히 내가 한 말 100% 다 못 지키고 살았어요.

그러나 교우들이 나를 볼 때, ‘우리 신부님 강론대에서 하시는 말, 무던히도 지키려고 애는 쓰시는 분이야.’

적어도 이런 평가는 받아야 위선자소리를 듣지 않지...강론 대에 서면

‘겸손해야된다.’ 하면서도 누구보다도 교만하게 살면 겸손에 대해 강론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죠.


그건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에게 기도해라. 기도해라. 성당가라. 성당가라.

입으로만 아무리 떠들면 뭐하냐 말이예요.

우리 아버지 묵주기도 하는 것 본적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우리엄마 입만 열면 항상 시어머니 흉보고, 남편 흉보고...

그런 모습을 자식이 지켜봤을 때, 그것이 과연 신의가 있겠는가? 그 자식이 뭘 배울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종이 한 장을 반으로 접어서 두 코가 맞게끔 딱 떨어지게끔은 못살아요....

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나 적어도 지키려고 애는 써야 위선자소리를 듣지 않지 않겠는가?


그럼 진리 안에 산다고 하는 그 뜻은 과연 뭘까?

과연 여러분들이 오늘 강론의 주제인 진리 안에서 일년 동안 살았는가?

진리 안에 산다는 것은

첫 번째로 진리를 전해야 됩니다.

두 번째로 진리가 아닌 것에는 눈길조차 줘서는 안 됩니다.

세 번째로 내안에 있는 거짓 진리를 없애고 예수님의 참 진리로 바꿔야 한다.


그 말은 뭐예요? 쉽게 얘기하면.....전교 해야 된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아마 모르긴 몰라도 95%는 세례를 받은 사람들일 거예요.

나머지 5%는 예비자들, 개신교 신자들, 아니면 불교신자들도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어요.

95%가 다 세례를 받으신 분이라 믿고 있는데 그 세례 받게 된 걸 보면

어떤 사람은 태어나 보니까 이미 천주교 신자가 되어 있어.

태중교우죠. 어떤 사람은 시집오려고 하니까 시댁 쪽이 천주교라 그것 때문에 종교를 바꾼 사람도

있고, 동기는 다 다를 거예요.

그렇지만 공통적인 것은 뭐냐?

하느님에게 영적인 빚을 지고 있어요.

누구에 의해서 내가 하느님의 자식이 되었다고 그런다면

우리에게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하느님에게로 이끌어야 될 영적으로 전교의 빚을 지고 있다.


예수님의 3대 유언가운데 첫 번째 유언이 뭡니까?

‘온 세상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여라.’

그래서 선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개신교 신자들 전철역 앞에서 성서책을 들고 ‘예수 믿으라.’ 고 떠들죠.

우리 천주교 신자들 그걸 보면 뭐라 그래요.

‘에이구~~ 극성 아이고 극성, 왜 신앙생활을 저렇게 해?’

그거는 부러움에서 나오는 얘기예요.

내가 그렇게 못하니까~~

정말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처절하게 체험하고 내 구세주시란 것을

깨달으면 이 좋은 것, 세상 사람들에게 안 알리고는 못 배겨요.

로마 군인들이 잡으러 올까봐 다락방에서 덜덜 떨고 있던 열두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

다락방을 확 박차고 나가서 예수 부활하셨다고 외쳤잖아요. 그래서 교회가 시작되었잖아요.


저는 요즘은 그런 보속을 잘 안 드리는데 그전에는 내가 어떤 보속을 드렸느냐?

성사를 보러 들어오시면 버스 차부에 가서 20번씩 외쳐라.

‘예수 믿으십시오, 예수 믿으십시오.’

주변 사람이 다 들리게 20번씩 외쳐라!

어떤 사람은 ‘신부님 다른 걸로 바꿔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나도 자존심이 있지 못 바꿔 줘.

그렇게 보속을 주고 난 다음에 저는 쫒아가 봅니다.

미사 끝나고 나면 그래도 받은 보속이 있기 때문에 차부까지는 가요.

차부까지 가서는 앞뒤를 다 둘러보고 사람 제일 없을 때

‘믿어, 믿어, 믿어, 믿어라.’

맨 마지막에 한 번 ‘예수~ 믿어라.

저는 즉시 쫒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나 따라해! 예수 믿고 구원받읍시다.”

진리 안에 산다고 하는 첫 번째 의미는 진리를 전해야 돼요.

 

나중에 우리 심판받을 때 주님이 물으실 겁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뭘 물어보시겠어요?

너 어떤 차타고 다녔냐?

너 아파트 몇 평에서 살았어?

너 동산이 얼마야? 부동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었어?

그분이 우리들한테 물을 것은 그런 게 아니죠.


물을 것 중에 첫 번째가

‘너 나를 알고 나서 세례 받고 60년을 살았는데 그 60년 동안에 니가 기도와 노력과 희생으로

나에게로 끌어다 놓은 영혼이 몇 명이나 되니?’

‘모르긴 몰라도 꽤 될걸요.’

이게 지금은 안 통해..요즘은 천국도 다 전산화가 되어가지고

이름 석 자 컴퓨터로 ‘김 개똥’만 딱 찍으면 그 사람의 그것이 쫙 떠~~

“뭐 꽤 돼? 개뿔, 아무것도 없다야....”


진리 안에 산다고 하는 두 번째, 진리가 아닌 쪽에는 눈길조차 두지 말아라.

우리 한국 가톨릭에 위기 중에 하나가 뭐냐?
소위 유사종교가 들어오고 있어요.

신영성 대표적인 것이 있죠? 뉴에이지.

지금 뉴에이지가 안 퍼져 있는 데가 없어요.

일본에서 들어온 정신세계운동.

또 한국에서 옛날부터 해오던 기수련 운동

기운동도 어느 정도까지는 자기 몸을 도와주는 단계이지만 그 단계를

넘어가면 종교가 되어버려요.

기도장 다녀보신 분들 잘 알아요.

이런 유사종교운동의 특징이 뭐냐?

공동체를 거부해버려요.

내 건강, 이게 최고야.

그래서 어느 날 구역모임에 잘 나오고 성당생활 잘 하던 자매가 레지오 잘 나오던 자매가 안 보이는  거예요.

어디 갔나~~ 알아봤더니 거기 빠져있는 거예요.

기도장에 앉아있던지, 계룡산 밑에 한마음 수련장에 가가지고

그 계룡산에 가보면 어마어마하게 큰 강당이 있는데 일요일이면 수천 명이 모여요.

거기에 얼마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거기가 앉아있는지 몰라요.

거기서 벽에다 점하나 찍어놓고 점 쳐다보라고 그래요.

‘다 비워야한다.’

어느 단계가 되면 니가 이제껏 제일 귀하게 여기고 있던 것을 버리기 위해서 일단 저주를 해라.

천주교 신자가 앞에 끌려 나와서 간증을 하듯이 성모님 뭐 하면서 쌍욕을 하는 거예요. 예수님 뭐 개.....

그것 하고 난 다음에 어느 신자는

‘오늘 내가 미쳤어, 미쳤어... 내가 오늘 뭐한 거야?’

성당 와서 엉엉 울면서

‘신부님 제가 마귀 유감에 빠져서 그 짓거리를 하고 왔습니다. 성모님한테 오만 욕을 다했습니다.’

그런 것이 사이비 집단, 이것이 바로 유사종교운동,

시대가 자꾸 어려워지고 요즘같이 힘들 때일수록 자꾸만 그런 쪽으로 가요.

지성종교보다는 뭔가 감각적으로 기복적으로 일을 해결해 줄 것 같은

그런 쪽으로, 점집 쫒아 다니고, 철학관에 한번 가서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야? 사업이... 왜 하는 것 마다 안 돼?’

남산 밑에 족집게 도사가 하나 왔다고 친구가 가보자고 하면

“미쳤니? 나 천주교 신자야. 그런데 거기 어떻게 가야되니?”

그래 시대가 이렇게 힘들수록 자꾸 유사종교운동에 빠질 수밖에 없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진리가 아닌 쪽엔 눈길조차 주면 안 된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세상의 주인이시고, 생명의 주인이시고,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매달리고 하느님께 하소연해야지 힘들고 어려울 때,

왜 헛된 것, 헛된데다가 우상숭배하고 삽니까?

절대로 그런 쪽에 눈길 돌리지 마세요. ~~답변에 이어집니다~~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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