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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03 조회수692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12월 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



"Go into the whole world
and proclaim the gospel to every creature.
Whoever believes and is baptized will be saved;
whoever does not believe will be condemned.
(Mk.16,15-16)



제1독서 신명기 10,8-9
제2독서 1코린 9,16-19.22-23
복음 마르코 16,15-20

겨울이 되면 전에 생활했던 갑곶성지가 떠올려집니다. 왜냐하면 갑곶성지에서는 겨울을 보내기가 그렇게 쉽지 않았거든요. 보일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곳에서 산다는 것, 또한 눈이 오면 하루 종일 눈을 치워야 하는 고단함들이 떠올려집니다. 그래서 그때에는 보일러가 제대로 작동되는 따뜻한 곳에서 사는 삶이 그리웠고, 눈을 치울 필요 없는 곳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때가 더 재미있고 신나는 시간이었다고 말하지만, 당시에는 따뜻한 방이 있고 눈을 치우지 않아도 되는 곳에 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소박한 꿈입니다. 그런데 저의 지금 생활은 그때의 꿈이 모두 이루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따뜻한 방에서 생활하며, 눈을 굳이 치우지 않아도 되는 곳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이루어졌다는 이유로 행복하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즉, 당시의 내가 부족한 것을 채웠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어쩌면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모으는 삶이 아닌, 나누는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모으는 것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지만, 나누는 것은 나 혼자서 불가능합니다. 나 그리고 내가 나누는 것을 받는 그 누군가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이 세상을 나 혼자만 살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나 혼자만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을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따라서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나눔을 통해 행복을 얻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이 행복이 담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선포하라고 주님께서는 명령하셨지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사도 바오로께서도 이 점을 분명히 아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왜 부자가 되려고 할까요? 행복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행복은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혼자만의 만족으로는 얻기 힘들고, 대신 나눔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눌수록 커지는 것. 이것이 행복의 산술법이라고 하지요. 이 행복의 산술법을 얼마나 잘 지켜나가고 있을까요? 그래서 내 안에 있는 행복을 얼마나 세상에 많이 전하고 있을까요?

주님께서 주신 행복. 이제는 내 이웃들에게 전할 때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은 아름다운 얼굴보다 낫고 아름다운 행동은 아름다운 자태보다 낫다.(랄프 왈도 에머슨)




나의 고민 역시 주님의 선물일 수 있다.

제가 방송하는 셋트장. 방송나오는 것과 좀 다르죠?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듯이, 저는 일찍 노안이 와서 책을 볼 때에는 돋보기안경을 써야만 합니다. 그런데 눈이 나빠진 제 자신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필요 없는 것은 이제 보지 말고, 필요한 것만 보라는 것이 아닐까?’

어떤 분은 나이가 들어가니까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숨 섞어 말씀하십니다. 이 분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이제 필요 없는 말은 듣지 말고, 대신 필요한 말만 들으라고 잘 들리지 않게 했단다.’

또 어떤 분은 나이를 먹으니 이가 별로 좋지 않다고 불평을 말하십니다. 이런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이제 나이도 먹었느니,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기 위해 연한 음식만 먹으라는 배려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까 모든 것이 다 주님의 뜻이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나이 들어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다니지 말라는 것’이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 든 사람임을 다른 이들이 알아보게 하려는 배려’인 것입니다. 또한 건망증이 심해진 것은 ‘살아 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고, 대신 좋고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생각해보니 고민, 시련, 고통 등이 모두 주님의 배려였고 사랑이었습니다. 문제는 나의 기준에 맞춰서 생각하는 어리석음이지요. 이제는 주님께 대한 어리석은 불평과 불만은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대신 주님의 배려와 사랑에 감사하면서 더욱 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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