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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광야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 12.0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04 조회수557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1.12.4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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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광야 인생입니다.

인적 없는 외딴 곳만 광야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자리 모두가 외롭고 쓸쓸한 광야입니다.

이래서 군중 속의 고독이요 도시의 광야라는 말도 회자됩니다.

 


예전 수도승들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악마와 싸우기 위해 광야를 찾았지만

우리는 오늘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 광야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악마와 싸웁니다.

 


광야에 걸 맞는 춥고 쓸쓸해 보이는 초겨울 풍경입니다.

밖에만 광야가 아니라 우리 마음 또한 광야입니다.

내적광야의 마음입니다.

 


이 내외적 광야를 어떻게 잘 가꾸고 돌 봐 낙원으로 만들어가는 가가

우리의 필생 과제입니다.

오늘의 강론 주제는 ‘광야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가 되겠습니다.

 

첫째, 주님의 백성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광야인생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충고와 조언보다는 위로와 격려의 사랑입니다.

 


위로(慰勞)란 말과 더불어 한자 ‘위(慰)’자가 들어가는

위안(慰安), 위문(慰問), 위무(慰撫), 자위(自慰), 위령(慰靈) 이란 말들

역시
마음 따뜻해지는 느낌입니다.

이런 ‘위(慰)의 사람들’이 가슴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너나할 것 없이 위로를 필요로 하는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서로 간의 위로가 격려가 살 힘과 의욕을 줍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이사야서를 통한

주님의 간곡한 첫 일성입니다.

위로자 성령이자 위로의 하느님이요 위로를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본기도 역시 ‘모든 위로의 샘이신 아버지 하느님’으로 시작됩니다.

참 좋으신 위로의 하느님이요 어느 때 보다 위로에 갈급한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세상살이 고달프고 상처가 많다는 것입니다.

위로의 눈 빛, 위로의 말, 위로의 글, 위로의 표정, 위로의 몸짓 등

위로를 목말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고달프게 살아가는 이웃에게

위로는 못줄망정 상처를 줘서야 되겠습니까?

하여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위로를 찾아 끊임없이 수도원에 옵니다.

이런 하느님의 위로를 체험할 때 우리 역시 이웃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이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 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넘칩니다.”

 


바로 하느님의, 그

리스도의 넘치는 위로를 받기위해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미사를 통해

광야여정 중인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끊임없는 하느님의 위로를 받는 우리들이요,

이 위로가 이웃을 위로할 수 있게 하고 때로는 하느님을,

또 내 자신을 위로할 수 있게 합니다.

 

둘째, 주님의 길을 닦는 것입니다.

 


광야인생에 길을 잃어 길을 못 찾아 방황이요, 길이 막혀 좌절입니다.

애당초 사람은 누구나 길을 찾는 구도자요 길을 닦는 수도자입니다.

은총의 광야의 대림시기 하느님 향해 이 주님의 길을 닦는 시기입니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이사야 예언자는 물론 광야의 외치는 이의 소리 세례자 요한의

간곡한 명령입니다.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길 찾아 밖으로 나갈 필요 없습니다.

내 주님의 길 내가 닦아야지 누가 대신 내 주님의 길을 닦아주지 못합니다.

눈만 열리면 지금 여기로 부터 하느님 향해 나 있는 길, 주님의 길입니다.

새 길을 닦는 게 아니라

이미 나 있는 주님의 길을 닦으며 하느님께 가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의 기도보다

주님의 길을 닦는데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매일 일과표 궤도의 길 따라,

교회 전례주기 궤도의 길 따라 하느님께 가는 우리들입니다.

 


밖에만 길이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의 광야에도 마음의 길, 주님께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외적질서에 상응하는 내적 질서요

외적 길과 더불어 가는 내적 마음의 길입니다.

외적 전례주기 궤도의 길에 충실할 때

하느님 향한 내적 마음의 길도 점차 곧아지고 평탄해지고 넓어집니다.

이사야 예언이 그대로 실현됩니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야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리라.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바로 이게 내적혁명, 마음의 혁명이요 마음의 길 닦는 일입니다.

교만은 겸손으로,

거칠고 차고 어두운 마음은 부드럽고 따뜻하고 밝은 마음의 길로 바뀝니다.

이런 내적혁명에 저절로 따르는 외적혁명에 외적 환경의 변화입니다.

 


묵묵히 내 삶의 자리에서

세례자 요한처럼 겸손하고 단순 소박한 삶의 자세로

주님의 길을 닦는 온갖 수행에 충실할 때

내 마음 주님의 길 위에 태양처럼 떠오르는 주님의 영광입니다.

 


매 주일 미사시간은 일주일 동안 닦아온 내 주님의 길을 뒤돌아보면서

한 주간 닦아갈 내 주님의 길을 내다보는 영적휴식의 관상시간입니다.

 

셋째,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광야의 대리시기 오실 그분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기다림의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기다릴 때, 주님을 희망할 때 샘솟는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예전에 써놓은 ‘기다림’이란 시를 나눕니다.

-나무로 서서 기다리가가/바위로 앉아 가다리다가

길 되어 누어 기다리는 이 마음/주님, 당신은 아시는지요? -

 


수확이 끝난 초겨울 빈 배 밭의 하늘 향한 침묵의 빈 배나무 가지들

마치 하늘 은총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모습 같습니다.

아니 말 없는 세상 피조물 모두가

구원의 도래를 간절히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그분을 기다리는 넘치는 갈망 있어 항구히 주님의 길을 닦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위하여 참고 기다리십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시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생각하며 기다리기에

희망차게 주님의 길을 닦아갈 수 있습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오늘 지금 여기 하루를 일생처럼 살아갑니다.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을 기다리는 이들은 무기력하게 피동적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거룩하고 신심 깊은 생활을 하면서 그 날을 앞당겨 살아갑니다.

말 그대로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아, 이 새 하늘, 새 땅의 빛나는 비전이

현재의 온갖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이 비전이, 희망이 평범한 일상을 역동적 비범한 일상으로 바꿉니다.

언젠가 그 날이 아닌 지금 여기서 새 하늘, 새 땅을 앞당겨 살게 합니다.

 


지금 여기가 영원이요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새 하늘과 새 땅의 주님 성탄을 기다리는 만큼

이 광야의 대림시기,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길을 닦으며 오시는 주님을 마중 나가는 광야의 대림시기입니다.

서로 위로하고, 주님을 기다리며, 주님의 길을 닦아갈 때

이 주님의 길이 광야인생을 빛과 생명, 기쁨과 희망으로 출렁이게 합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바로 이런 우리의 기쁨을 대변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말고 소리를 높여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바로 우리가 닦는 주님의 길로,

주님은 목자처럼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고,

권능을 떨치시며 우리에게 오십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시온처럼, 예루살렘처럼

기쁜 마음 활짝 열어 오시는 주님을 영접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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