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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거룩한 침묵/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07 조회수774 추천수13 반대(0) 신고


기도할 때마다 콜롬보 신부님의 빈자리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에 쉰 목소리가 나온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항상 유머 넘치는 말씀으로 주위를 밝게 비춰 주시던 분이셨는데 종양이 발견되어 검사를 마치신 다음부터는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이제는 식사도 침대에서 할 정도로 쇠약해 지셨다.

아침, 저녁으로 문안을 여쭈러 찾아뵈면 여전히 환한 얼굴로 반기시지만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과 병색이 완연한 창백한 얼굴은 내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어서 기분이 좋지 않다.

오늘 오전에 갔을 때는 이 더운 날씨에 모직 소재의 가디건까지 걸치고 이불 속에 들어계시면서 활짝 열려져 있는 창문을 통해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콜롬보 신부님, 추우시면 창문 닫을까요?”

“아니 그냥 놔둬라. 창문을 닫으면 밖의 뜨거워진 공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더 추워. 또 밖의 소리를 듣고 싶기도 하고......”

“우리 한국 사람들은 여름이 오기 전에 몸보신을 하기 위해 삼계탕이라는 음식을 먹거든요. 신부님도 한 그릇 드시면 금방 일어나실 텐데 저하고 같이 가실래요?”

“글쎄다. 하느님께서 내게 다시 힘을 주시면 일어나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 동안 수고했으니 당신 곁으로 와서 쉬라고 하실 것 같다. 이번 여름이 마지막이 될 것 같은데 너는 이번 여름방학에도 다른 곳으로 가겠지?”

“예, 6월말에 떠나요.”

“......”

콜롬보 신부님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도 아무 말 없이 그 옆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 긴 침묵이 전혀 어색하거나 낯설지가 않았다. 아버지께서 먼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함께 보낸 마지막 날들에도 나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아버지 옆에 있는 것이 좋았다. 나는 그것을 '거룩한 침묵'이라 이름하였고, 그 거룩한 침묵 속에 있는 것이 참 좋았다.

먼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 앞에서 무슨 말이 특별히 필요하겠는가? 당신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잘 가라고? ‘잘 가라’는 인사는 결국 ‘잘 오라’는 말이 아니었던가? 그 말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침묵뿐이다. 침묵 속에서 그와 함께 ‘있는’ 일 뿐이다. 너무나 귀한 시간이라서 차라리 거룩한 침묵 속에서 함께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느끼는데 온 정신을 몰입하면서 쓰는 것이 옳다. 이 때 언어는 방해만 될 뿐이다.

만약 당신이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 말 없이 그의 곁에 서서 함께 ‘있음’을 느껴보라. 그 함께 ‘있음’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축복인지를 맛보라. 그 맛을 본 사람은 이제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힘을 얻은 셈이다.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거룩한 침묵 속에서 영원토록 당신과 함께 ‘있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
당신 역시 그 거룩한 침묵 속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하느님은 침묵을 깨고 당신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 빈자리는 없다.

“내 찬미의 하느님, 침묵을 깨고 나오소서.”(시편109,1)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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