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07 조회수1,025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12월 7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meek and humble of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selves.
(Mt.11.29)


제1독서 이사야 40,25-31
복음 마태오 11,28-30

공지했던 바와 같이 어제는 새벽 묵상 글을 열 수 없었습니다. 교구 전례꽃꽂이 임원 연수를 다녀왔거든요. 장소는 충남 보령에 위치하고 있는 무창포 해수욕장이었습니다.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비록 바닷길이 갈라지는 날이 아니어서 볼 수는 없었지만, 오랜만에 겨울 바다를 바라보면서 몸과 마음의 쉼을 가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께 점심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난 뒤, 점심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왔지요. 그리고 제가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두었던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K방송국의 유명 프로그램에 나왔던 곳이며, 사람들도 좋은 평가를 했던 곳이라 의심하지 않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공사 중이라 너무나도 시끄러웠으며, 주인으로 보이는 자매님께서 너무나 불친절하더군요. 가격을 조금 깎으려고 하자, 오히려 정색을 하며 화를 내는데 도저히 이곳에서 식사를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이 식당을 나와 다른 곳에서 저희는 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사실 우리들이 이 식당을 찾았을 때, 단 한 명의 손님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점심 식사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손님이 없을 만하다 싶었습니다. 방송에 나옴으로 인해 사람들이 몇 차례 찾아갈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불친절해서는 다시 찾아가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 식당의 주인은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왜 자신들에게 이렇게 시련과 고통이 오느냐고 불평불만을 던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몰상식한 손님 때문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장사가 잘 되는 집을 잘 보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친절하며 아주 자그마한 것 하나를 가지고도 손님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고통과 시련 역시 남의 탓, 하느님 탓이 아니라 바로 내 탓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내가 더 사랑한다면, 내가 더 넓은 마음을 간직한다면, 고통과 시련이 아니라 기쁨과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을 통해 힘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주님 곁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미움보다는 사랑을 간직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기쁨과 희망을 발견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고통과 시련 속에 있다고 생각했던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때에는 주님과 함께 하기보다는 세상의 것에 더욱 더 젖어 있었고, 내 뜻대로 살려고 할 때였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결국 주님 안에서만 참 행복과 기쁨 속에 살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마음을 잡아 주님께 나아가야 거룩한 대림시기입니다. 이 시기동안 고통과 시련들을 내 안에서 몰아 내어 기쁨의 성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한 가지 축복을 잃는다 싶으면 어느 사이엔가 다른 축복이 자리를 메우는 법이다(C.S. 루이스).




고통이 주는 선물(강유일, '아아, 날이 새면 집 지으리라' 중에서)

무창포 해변의 석양

좋은 글이 있어, 이 자리를 통해 소개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간질병과 사형수의 고통이었다.

로트레크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를 경멸 덩어리로 만들었던 난장이라는 고통이었다.

생텍쥐페리를 위대하게 만든 것도 그를 일생 동안 대기 발령자로 살아가게 한 평가 절하의 고통이었다.

베토벤을 위대하게 만든 것도 끊임없는 여인들과의 실연과 청신경 마비라는 음악가 최대의 고통이었던 것이다.

고통은 불행이나 불운이 결코 아니다. 고통이란 도리어 행복과 은총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번제물인 것이다. 당신이 지금 지나치게 행복하다면 그것은 곧 불행이다. 당신이 지금 지나치게 불행하다면 그것은 곧 행복이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비로소 자아를 불사를 용광로 속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며, 용광로 속에서 신의 손에 의해 아름다운 은으로 새롭게 빚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암석이 용광로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결코 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고통. 정말로 내게서 없어졌으면 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 한, 고통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