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전직이 조폭출신인 어느 한 사람에게 세례를 준 적이 있는데 그는
세례 받은 후에도 그 악습이 계속 남아 있어서 본인도 힘들어하고
주변사람들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속이 답답하면 술을 먹고 찾아와서 나에게 땡깡 아닌 땡깡을 부렸습니다.
그에게 보속을 주기를 ‘마태복음서부터 성서를 차례차례 읽어 보아라!’
어느 날, 그가 나를 찾아오더니 방금 우리가 읽은 복음을 지적하면서
“신부님, 요셉이 바보가 아닙니까?”
두 가지 점에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데
첫 번째는 ‘남의 새끼를 어떻게 자기 새끼처럼 키울 수 있습니까?’
두 번째는 ‘어떻게 부부가 한 집에 살면서 동정을 지킬 수가 있습니까?’
“신부님이 요셉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는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으니 네가 요셉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저라면 마리아를 가만히 안 두었지요.”
그 형제 이야기가 이해가 가요.
성서에 보면 이런 바보가 성 요셉 뿐이겠습니까?
바보 중에서 가장 큰 바보가 예수님인것, 아시지요?
따지고 보면 성서는 바보들을 총집합한 책이라는 겁니다.
크리스천영성의 시작은 바보가 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세상에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다 있네~`
세상법과 반대되는 바보로 살아가는 천주교인들을 보고
이방인들이 먼저 성당으로 이끌어달라고 그래요.
바보들만 모여 사는 본당에는 예비자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수많은 바보이야기가 나옵니다.
후세사에 큰 역할을 한 분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아브라함, 모세, 성모마리아, 요셉......
오늘 복음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는 성서에 세 번 나옵니다.
첫 번째,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는 모습
두 번째는 호적 하러 유다지방에 갈 때
세 번째는 성탄 직후에 헤로데를 피해서 이집트로 마리아와 예수를 데리고 갈 때
이 세 번을 통해서 요셉이 어떤 성인인지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요셉성인은 분명히 바보인데 지혜로운 바보, 똑똑한 바보입니다.
지혜로운 바보, 똑똑한 바보에게 나타나는 세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 요셉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도생활과 영성생활은 반비례합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면 금욕생활을 하는 부부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순절만큼은 우리 금욕생활을 하자!’
우리 한국 순교사에 등장하는 유명한 루갈다 동정부부의 삶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동정을 지킬 수 있다는 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드러나요.
루갈다 동정부부는 산 하나 사이로 처녀 총각으로 살았어요.
동정으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세상 풍습 때문에 그럴 수 없었어요.
첫날 밤 루갈다 동정부부는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맹세를 합니다.
‘우리 부부가 서로 동정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가톨릭 2천년 동안 동정부부들은 의외로 많아요.
여러분들, 신부님들이 혼자 사는 이유가 뭐예요?
제가 어렸을 때, 본당에 가보면 대부분 외국신부님들었어요.
알랑들롱, 그레고리오 팩을 뺨치는 미남 신부님들이
미사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갔어요.
‘아마 저 분들은 신체적으로 무슨 결함이 있나보다!’
세상 사람들은 사제가 혼자 사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힘이 저렇게 혼자 살도록 둘까! 뭔가 힘이 있을 거야!’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지요.
사제의 독신제도는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하느님을 증명하는 겁니다.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그랬지요?
그때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성령의 힘으로 잉태된 것이니 받아들여라!’
그 이후 죽을 때까지 동정으로 살았어요.
예수님이 십자가 밑에서 울고 있는 어머니에게 ‘
“어머니, 요한이 당신 아들이십니다.”
“요한아, 오늘부터 이 분이 네 어머니이시다!‘
왜 예수님이 요한에게 어머니를 맡겼겠습니까?“
다른 형제가 없었던 거예요.
성서에 번역된 형제, 자매는 사촌 육촌......먼 친척을 가리키는 말이예요.
개신교에서는 그걸 가지고 ‘성모님이 어떻게 동정녀냐?’
그렇게 말하지만 그 단어는 친동생을 가리키는 게 아니에요.
요셉은 지혜로운 바보입니다.
지혜로운 바보의 첫 번째 특징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했기 때문에 성모님을 지켜드릴 수 있었던 거예요.
지혜로운 바보의 두 번째 특징, 요셉은 신중하고 정말로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자기 약혼녀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 찾아오는 감정은 아마 복수심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요셉은 신중하고 너그러운 사람이기에
‘내가 알고 있는 마리아는 몸을 함부로 굴릴 여자가 아니야“
우리 같으면 머리채를 잡고 ‘이 여자가 가진 아이는 내 씨가 아니야!’
그랬다면 성모님과 태중의 예수님은 돌로 맞아 죽었을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요셉은 참았어요. 참았더니 해결이 되었지요?
꿈에 천사가 나타나 그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었어요.
여자의 아름다움을 세 가지로 그래요.
미소 짓는 여자가 아름답고, 기도하는 여자가 아름답고
젖 먹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아마 그중에서 미소가 으뜸일거예요.
여자의 얼굴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느냐 어둡게 만드느냐는
100% 배우자에게 달려있어요.
어떤 남자는 내가 봐도 속이 밴댕이 콧구멍보다도 더 좁아요.
그렇게 살려면 왜 장가를 갔어~ 지 혼자나 살지~~
신중하고 너그러운 남자가 되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이 시점에서 저는 수녀님들의 눈치를 봅니다~^^
피정을 다니면 ‘아, 신부님이랑 사는 신자들과수녀님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저는 그 때 이렇게 말하지요. “너도 와서 한 번 살아봐라!‘
지혜로운 바보의 세 번째 특징, 요셉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천사의 말을 의심치 않고 따르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꿈에서 어렴풋이 듣고 따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만
성 요셉처럼 따르지 않고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주파수가 있는데
첫 번째, 하느님은 늘 양심을 통해서 말씀하세요.
죄짓고 마음 편한 사람 없어요.
두 번째,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주파수가 있는데
주일날 본당신부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서를 통해서 나에게 말을 건네십니다.
어느 주파수보다 가장 선명하게 하느님의 목소리가 잘 들리는 주파수
십자가, 고통이라고 하는 주파수가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왜 하필이면 내 자식에게 이런 일이~~’
그러나 그 안에 하느님의 목소리는 분명히 있어요.
성 요셉의 태도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합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요셉은 받아들였습니다.
요셉성인이 성모님과 예수님을 목숨 바쳐 섬기셨듯이
우리도 내 안에 계신 주님을 사랑하도록 합시다.
마리아를 지켰고, 태중에 계신 메시아를 지켰던
요셉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일까요?
요셉이 임종할 때 예수님이 그 임종을 지켰어요.
성모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살면 우리도
언젠가 하늘나라에 갈 때, 예수님이 우리를 지켜주세요.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을까요?
임종이 가까워오면 마귀가 들끓어요.
그때 예수님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요셉은 모든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유일하게 양아버지의 임종을 지켰어요.
성체를 영할 때마다 죄와 어둠으로부터 죽어가는 우리를 살려주시는 분!
말씀으로 거듭나게 해주시고, 이 세상 살다가 언젠가 숨을 거둘 때
요셉성인을 지켜주셨듯이 사탄이 우리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예수님이 막아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요셉이 가진 세 가지 덕을 따릅시다.
요셉처럼 지혜로운 바보가 되려면
첫 번째,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너그럽고 신중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 성인은 천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 천사가 시키는 대로 받아들인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역사에 큰 몫을 했습니다.
요셉 성인에게 주신 하느님의 가장 큰 은혜는
세상 떠날 때, 예수님이 지켜주셨다는 것!
우리도 죽을힘을 다해서 예수님과 성모님을 지킨다면
우리가 이 세상 떠날 때, 아니면 벼랑 끝에 서있을 때,
우리를 지켜주실 분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도록 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