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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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냉정한 사랑/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08 조회수613 추천수9 반대(0) 신고



주일 미사를 드리고 있던 중, 갑자기 초등학생 때 ‘주말의 명화’에서 봤던 외화外畵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너무 오래돼서 제목은커녕 전체 줄거리도 다 생각나지 않지만 그 한 장면만큼은 배우들의 얼굴 표정까지 떠오를 정도로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칠흑같이 어둔 밤, 십여 명의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뒤 쫒는 독일군들을 피해 달아나다가 언덕 밑 덤불 속에 숨어 있었다. 바로 그때 잠에서 막 깨어난 갓난아기가 칭얼거리기 시작하였고 아이의 엄마는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그 옆에서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숨을 죽이고 있는 다른 어린애의 눈과 잠시 마주쳤다. 뒤를 쫒던 독일군들이 점점 다가오자 마침내 엄마는 소리 없이 눈물을 삼키며 아이의 입과 코를 틀어막는다. 잠시 후 독일군들이 지나간 뒤 엄마가 손을 떼어도 아기는 아무 소리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젖을 달라고 우는 것이 아기들의 본성이라면 우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것이 엄마들의 본성이다. 배가 고픈데도 울지 않는 아기가 있다면 그 아기는 정상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젖을 달라 우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대신 입과 코를 틀어막는 엄마 역시 제 정신으로는 못할 노릇이다.

하지만 가끔씩 우리는 편안하고 익숙한 본성마저 뛰어넘는 냉정한 사랑을 체험한다. 예를 들자면 엄마를 향해 열심히 뛰어오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진 아이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날 때까지 아리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에서 아이는 사랑의 또 다른 일면으로서의 작은 냉정함을 체험한다. 예수께서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 위에 세우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냉정한 사랑에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마르15,33)하며 울부짖는다.

나는 본성과 사랑이 서로 대립되거나 분열된 두 개의 서로 다른 가치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들의 인간적인 본성보다도 항상 위에 있고 또한 그것을 항상 초월하는 ‘신적 사랑’, 특별히 예수에게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의 응답으로서 하느님에 대한 인간들의 사랑 그리고 그것을 모방하려는 인간들의 현실에서도 가끔씩 체험되는 ‘아가페’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슬라보예 지젝’이 그의 저서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The fragile absolute)’에서 말하고 있는 ‘현실을 대면하지 않고 회피하는 감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주체로 하여금 철저하게 현실에 직면하게 하는’, 그래서 다분히 ‘냉정한 사랑’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것이 내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12,14)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에서 우리는 예수가 사랑하는 방법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예수는 항상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 외아들을 십자가 위에 세우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최고의 가르침으로서의 사랑은 결코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감상적인 사랑이 아니다. 열정에 너무 많이 기대고 있는 우리들의 감상적인 사랑으로는 결코 ‘친구들을 위해 목숨조차 내 놓는 큰 사랑’을 실현할 수 없다.

하느님 아버지의 냉정한 사랑 앞에서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며 울부짖던 예수께서는 “이제 다 이루어졌다.”(요한19,30)하시면서 숨을 거두신다. 외아들을 십자가에 세우시는 아버지와 그 뜻을 이루시는 아들의 사랑 앞에서 우리는 좀 더 무겁게 예수의 계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의 열정만으로는 많이 부족한 무엇인가가 계명 속에 무겁게 담겨져 있다.

“이것이 내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12,14)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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