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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208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08 조회수302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12월 8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6-38

그때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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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성모님의 축일입니다. 오늘을 나타내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란 주제는 그 이름 안에 여러가지 불가능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능하지 않은 일이 한 사람에게 중복으로 나타납니다. 원죄 없이 잉태될 수 있다는 것이 불가능이며 그런 분이 동정인 채로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것 또한 불가능한 부분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천사의 이야기처럼 성모님은 같은 사람으로서 전혀 불가능한 상황을 넘어서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성모님의 이런 기적적인 모습들은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기에 가능하다고 설명할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한 사람으로서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셨던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나도 사람인데"라는 말을 이중적으로 사용합니다. 내가 존엄하게 여겨져야 할 순간에도 이 말을 쓰지만 내가 실수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나타낼 때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들은 모두가 불가능한 한계 상황이거나 아니면 온전하지 못한 부당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말들입니다. 완전함이란 사람에게는 익숙하지 않는 단어이며 불가능한 단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상", "이상적"이라고 부르는 단어가 어느샌가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상태이나 전혀 불가능한 것처럼 변질되어버렸듯 사람으로서 결점이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부정되는 세상, 또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누구도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 사람으로서의 완전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오늘의 주제는 교회가 믿을 교리로 정하고 모두가 의심없이 믿어야 할 신앙의 영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그냥 한 사람을 신(?)에 가깝도록 드높이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은 짧은 순간들 속에 등장하는 마리아라는 한 사람의 모습에서도 그 기적적인 호칭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말은 태어날 때부터 죄가 없다는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죄 없음은 사람에게 죄의 뿌리가 없다는 뜻이어서 그 사람의 인생에서 죄를 짓게 되는 근거를 발견하지 못함으로 연결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에 대한 모습을 알지 못하는 이 어린 사람에게 천사는 인사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그리고 천사의 이어지는 이야기는 성모님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미래에 대한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는 것 외에는 메세지의 모든 내용은 태어날 분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 있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성모님의 반응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음을, 그래서 그 일이 가능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 모든 일에 대한 성모님의 반응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그 걱정에 대한 천사의 대답이 이어집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천사의 이야기 끝에 우리는 모두가 다 아는 운명적인 순명의 고백을 듣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야기 속에 내용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심에 관한 놀라운 메세지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 메세지를 받아든 성모님은 그 사실에 대해서는 놀람도 흔들림도 없습니다. 오직 성모님의 걱정은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부분이 전부였습니다. 후에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노래하는 성모님의 노래의 내용은 이 어린 여인이 이미 하느님이 하실 일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고 이미 그 일이 이루어질 것으로 알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의 것으로 알고 돌릴 수 있는 자세는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희망을 얻으셨던 사람됨의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삶에 하느님이 정하신 뜻이 이루어지고 그 질서를 통해 세상의 평화와 행복이 이루어지는 세상에 동의하고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 신앙 안에서는 이상적인 삶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이 질서를 끊어버리는 행동이 우리의 이기적인 동기와 자신을 우선하는 시도임을 압니다.

모든 죄의 근원이 하느님의 질서 속에서 자신의 것을 가지려 한 시도에서 비롯되었음을 생각할 때 어린 성모님의 모습 안에는 그 어떤 자연스런 이기적인 두려움도 거부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오심을 거절할 생각이 없음에도 태어날 아이의 생명에 가장 커다란 한계가 바로 자신임을 고백하는 모습은 원죄없이 잉태된 사람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에도 그 안에서 일을 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안도하며 스스로의 고백으로 하느님의 종임을 고백하고 그 뜻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고자 하는 성모님의 모습이 동정 잉태를 가져왔음은 우리가 너무나 익히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사람이 원죄 없이 잉태될 수 있음과 동정인 상태로 임신을 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능력 밖의 문제입니다. 오직 하느님만 가능한 이 일은 사람을 통해 세상 구원을 이루려 하신 하느님의 준비하심과 이 사건들을 통해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완전해지는 길을 가르쳐 주셨음을 보여줍니다.


이 일은 그 중심에 서 있는 성모님의 신분을 높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일로 인해 성모님은 갖가지 위협 속에 스스로 갇히셨고 숨겨진 삶의 주인공이 되어 버리셨습니다. 이 어머니의 삶이란 아들의 삶을 태어나기도 전에 알고 있었던 어머니, 그 아들을 지키기 위해 인생을 헌신하는 어머니, 아들의 길을 막고 서지 않고 함께 하며 그 생명의 마지막 길을 지켰던 어머니, 그리고 아들의 모든 것을 다음 사람들에게 모두 남겨주신 어머니로 사시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살면서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삶. 위해서가 아닌 함께 사는 것 자체로 삶의 의미를 이루고 완성한 삶이 원죄없이 잉태된 성모님의 삶입니다. 그것이 또한 하느님이 만드신 그 좋았던 원래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라는 이름은 하느님이 하시려 한 모든 것을 철저히 믿고 따르며 전한 예수님의 과거, 현재, 미래가 되셨던 어머니에게 붙여진 가장 이상적인 이름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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